"우리 인간의 지혜는 곧 사라지고 마는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문자를 발명하여 기록한 다음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책과 기록물로 도서관을 세워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어놓았답니다. 그곳에서는 어린이책에서부터 인류 최고의 지식까지 저장하여 자유롭고 평등하게 제공해주며, 우리가 원하는 보물을 언제나 아낌없이 안겨줍니다. 이러한 도서관이 있기까지는 탄생의 원형이 되는 '영혼의 요양소'가 있었습니다. 이를 창조한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와 그 이름을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라고 처음 불렀던 옛 그리스·로마인들에게 마음속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저자가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다.
자주 이용하면서도 낮은 문턱과 편의성에만 고마워하는 수준이었던 터라, 덕분에 새삼스럽게 도서관에 대해 생각해보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저자는 책날개의 이력과 책의 내용으로 보아 일생을 책과 도서관과 함께 보낸 사람인 것 같다. 어릴 적 [해저 2만리]를 읽으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던 소년은 책이 귀하고 도서관은 꿈만 같던 시절을 지나, 책도 도서관도 너무 흔하지만 대다수에게 뒷전으로 밀려난 지금껏 평생 한 길을 걸었다. 사서로 연구자로 교수로 수십 년을 보내고 퇴직한 후에도 저자에게 책과 도서관은 열정과 탐구의 대상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책 곳곳에서 느껴졌고, 그 극진한 마음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도서관 관련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어서 도서관의 기원과 역사, 세계 유명 도서관에 관한 개괄적인 이야기들이 엮여 있는 도입부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초반부터 조사 호응이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퉁해지고 집중이 방해되기 시작했고(이를테면 15쪽 "그 계기는 와이드너라는 한 젊은 청년이 캄캄한 바다에서 일어난 유람선의 침몰로 큰 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종종 등장했고 여지없이 몰입이 깨졌다.), 전반적으로 문체가 지루하고 내용을 풀어내는 데에서도 어딘가 고루함이 느껴져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저자의 직업 생활 자체가 한국 도서관 역사와 어느 정도 일치할 것 같고 견문과 경험치만으로도 관련한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쌓여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아쉬움과 하품과 책장 여닫기를 반복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로서의 관점과 의견에 의거한 것일 테니 문외한인 내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지점에서 특정 도서관이나 관련 견해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덧붙인 부분들 중 납득되지 않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경우, 내가 이해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서술도 있어서 이건 좀 싶은 마음이 되기도 했다. 후반부에 가서야 저자가 1939년생이라는 걸 알게 됐고 어렵게 책장을 넘기며 불만스러웠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상쇄되는 느낌이었지만, 이상한 나이주의 효과는 심리적인 것일 뿐이니 책에 대한 아쉬움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와중에 마지막 장에서 세계적인 학자와 문장가들의 단련을 언급하며 "공부를 더 하지 않고, 책을 더 읽지 않고 글쓰기에만 조급했던 자신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참회하고 싶다."(322쪽)는 부분을 읽으면서 난감하고 민망한 마음이 추가되었다.
책 모임 5월의 책이자 6월의 책이었으나, 2년 가까이 이어지는 모임 중 처음으로 한 번 연기된 후 아예 취소된 초유의 모임 책이기도 했다. 덕분에 5월에 한 번 빌렸다가 6월에 다시 빌려서 한 달 넘게 가지고 있었는데, 위에 적은 이유로 속도를 내기 어려워 느릿느릿 겨우 읽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흥미로운 부분들도 적지 않았지만, 가장 큰 깨달음은 문체가 내용 전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서문격인 첫 번째 장 말미에 엄연히 "문맥과 오탈자 등을 세심히 봐준 협력자"에 대한 언급이 나와버린 터라, 실은 이후의 비문이 더욱 거슬렸고 쓸데없이 예민하고 편협한 내 문제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전공서적도 아닌 대중적인 교양서적을 내면서 편집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저자의 개성을 살려버렸을까, 혹시 저자가 너무 어르신이라 수정 의견을 내기 어려웠거나 본인의 문체를 고수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간만에 매우 특이한 경험의 독서였다.
최정태
2021.9.6.1판1쇄, (주)도서출판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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