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침대에서 느릿느릿, 한참 동안 띄엄띄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어서 깊이 음미하며 잘 읽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런저런 영상과 음향에 중독된 하루의 잔상이 남은 밤이어선지 쉬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디인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배경에서 적군의 미사일과 방공호와 포격이 난무하는 첫 소설 “두 번째 밤”이 약간 난감하게 다가왔지만,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아빠가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그것뿐이었다.”는 문장에 이상하게 수긍하는 마음이 되었다.
책에는 스무 편 가까운 길고 짧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 덕인지 여름의 느낌을 풍기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표지 컬러 덕인지 찌는 듯한 더위보다는 여름 저녁의 서늘함과 어떤 그리움의 여운을 짙게 남겨주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오래 살았던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에 그곳을 함께 산책했던 강아지와의 다정한 시간을 떠올리고 의미 없이 뿌리 뽑힐 수많은 나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 원치 않는 싸움과 폭력이 난무하던 학창 시절을 채워준 음악과 친구와 고향의 기억,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변해갈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한 아련함에 마음이 공명했다(“여름의 마지막 숨결”).
언젠가부터, 내게 각인된 것은 아마도 [눈먼 자들의 국가]에 수록된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까지는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야.” 같은 작가 특유의 조용히 진취적인 삶의 태도와 세계관이 “첫 여름”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일관되게 드러나서 약간의 친근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었지만, 믿음으로써 사실이 되고 삶이 되고 운명이 되는 말의 힘 같은 것. 신비주의나 주술은 아니지만, 마음에 품고 잘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은 말을 마주하며 잠시나마 고양감을 느끼곤 했다. 이상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우리들의 섀도잉”은 오래 전 작가를 처음 만난 “꾿빠이, 이상”을 떠올리게 해줘서 반가웠다.
최근 자주 생각했던 참이라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에서 언급되는 조지 오웰 그리고 “우리의 발밑에 광부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광부들을 존재하게 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수학 여행 간 딸이 목숨을 잃은 경주에 작은 서점을 내고 오래 된 무덤이 즐비한 길을 걷는 이의 이야기인 “저녁이면 마냥 걸었다” 그리고 뭐라도 하고픈 책임감에 안산 지역 과학경시대회 입상자 수련회 참가자 명단에서 숨진 아이들을 찾아 편지를 남긴 주희와 시진 엄마의 이야기 “거기 까만 부분에”(근데, 도입부 시진 엄마는 이주희라고 하고 서술이 진행되면서 김주희라고 써져 있다. 오기일까,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를 읽으면서는 영화 [너와 나]가 떠올랐다. 압도적인 슬픔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환기하는 기록들을 마주할 때면, 다정하고 사려 깊은 예술가들이 고마워진다.
“토키도키 유키”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하코다테가 나와서 인덱스를 붙였는데 “언젠가, 봄이 되자 어른들의 키보다 더 높이 쌓였던 눈더미가 녹아내리면서 젊은이의 시체가 나왔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사람들이 늘 지나다니던 대로의 한복판에서, 머리는 검고 얼굴은 하얀, 여전히 아름다운 젊은이가.”에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됐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는지,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담은 두 문장에 소설 속의 소설이 자리한 느낌이었다. “나와 같은 빛을 보니?”는 일본에서 엄마의 장례를 치른 손녀가 제주의 할머니에게 보낸 서툰 한국어 편지의 일부다. 작가의 제주 레지던시 생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 듯한데 동료 예술가의 노래를 듣고 이어지는 서술에 눈길이 멎었다. “벨 에포크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시절이 벨 에포크인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한 번의 인생이란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은 뒤에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잘 살고 싶다면 이미 살아본 인생인 양 살아가면 된다.”
수록작 중 가장 분량이 긴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서 화자는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어린 날의 다양한 기억과 사연 들을 회상한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전복적인 현실에 직면해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소로(“1854년 2월 19일, 소로의 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 이 시기는 여름철에는 걷기 어려운 늪지, 강, 호수를 걸어야 할 때다.”)와 아우구스티누스(“다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에게 남긴 지침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를 사유하고 암 판정 이후 모임에서 단 한 번 만났던 이소노와 편지를 주고 받은 미야노를 인용한다. 1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단속적으로 과거와 더 먼 과거, 현재를 오가고 무수한 생략을 거쳐 2063에 이르는데, 이 때는 화자의 아이가 지금 자신의 나이쯤 될 40년 후의 미래이며 첫 번째 수록작 “두 번째 밤”(“왜 이 전쟁이 시작됐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언제 끝날지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안다고 믿고 행한 일들로 다다른 미래다.”)의 시기이기도 하다. 읽고 나니, 첫 소설에서 마지막 소설까지의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삶들의 순환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산만한 컨디션 탓에 때로 지루하게도 느껴졌지만 잠언처럼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았고, 사색적이고 정적인 이야기들에 마음이 고요해지기도 했다. 단편 소설을 잘 못 읽는 탓에 딱히 연작이랄 수 없는 짧은 소설들을 연이어 읽으며, 읽고 잊고 읽고 잊고 하는 일이 반복되는 독서이기도 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데, 세상 처음 보는 표현도 아닌데 이렇게 새로운 느낌일 수 있다니 싶은 부분이 종종 있었고 위에도 적잖이 인용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걷는 동안에는 적어도 걸어가고는 있으니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부분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그중 하나라도 실천하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일이지만 말이다.
여러 곳에서 낭독회를 하며 발표한 소설들을 묶은 책이라는 걸 작가의 말에서 알게 되었다. 말미에는 각 소설의 제목과 연관된 스무 곡이 넘는 플레이리스트와 2021년 10월 30일부터 2023년 6월 3일까지 낭독회가 열린 서점과 도서관의 목록이 정리되어 있다. 마지막 낭독회가 열린 곳은 창원, 인스타그램의 책방 소식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서 새로웠다. 작가의 첫 책부터 단독으로 낸 거의 모든 책을 읽어왔으니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직접 보고 싶다거나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신간을 마주하고, 때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를 테면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확고한 사유의 방향, 조금씩 익숙해지고는 있다.)은 넘어가면서 읽게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참으로 다정하게 사랑의 순간들과 사랑하며 사는 일에 대해 기록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울컥 슬퍼지고 마음이 이상해기도 했지만, 자전적인 고백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부터 근사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까지 읽고 잊고 읽고 잊고 하면서 내가 보냈던 많은 여름들 그리고 오래 잊고 지낸 얼굴과 이름 들이 떠올랐다.
김연수
2023.6.26초판발행, 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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