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4. 2. 6. 11:11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 오는 밤, 달리는 트럭을 멈춰 세운 경찰들이 운전석에 총구를 겨눈다. 짙은 화장에 핏자국이 어린 얼굴,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남성 그리고 트럭 뒷문이 열리자 보이는 수많은 개들. 전후 사정을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으로 시작된 영화는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더글라스와 그를 인터뷰하는 정신과의사 에블린의 대화를 따라가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미국 뉴저지주 교외에서 성장한 소년 더글라스의 어린 시절은 폭력과 학대로 점철됐다. 집 앞 개장에 가둔 개들을 굶겨서 투견으로 돈을 버는 아버지는 공포 그 자체인 광신도였고, 형은 그런 아버지의 편에서 개들을 불쌍히 여기는 더글라스를 궁지로 모는 적극적인 동조자였다. 더글러스는 옛 노래를 lp로 틀어놓고 요리하던 엄마 곁에서 잠깐의 안온함에 젖어들곤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오면 불안한 평화는 금세 깨졌다.  

굶주린 개들에게 몰래 먹이를 준 더글러스를 고자질한 형과 그에 광분한 아버지는 더글러스를 개장에 가둬버리고, 저항할 수도 더 이상 견딜 수도 없는 임신한 엄마는 몰래 먹을 걸 넣어주고 집을 떠난다. 불쌍히 여겼던 개들과 다를 바 없이 갇히고 굶주린 더글러스는 개들과 남다른 교감을 하게 되고, 어느 날 분노한 아버지가 쏜 총에 맞지만 극적으로 구출되어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수감된 아버지는 2주 만에 감옥에서 자살하고, 모범수로 복역하고 8년 만에 출소한 형은 개들의 복수로 거리에서 죽음을 맞는다. 

총격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더글러스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생활하던 중 보호시설에 방문하는 연극 교사의 권유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고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며, 어쩌면 난생처음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나름의 사랑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연기에 도전하기 위해 멀리 떠난 선생님의 흔적을 좇으며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의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와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름의 노력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한 선생님의 무대를 찾아가지만, 더글러스가 확인하는 것은 일방적인 짝사랑의 초라함이다. 게다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인 그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다. 오롯이 혼자인 세계에서 그가 의지하고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개들뿐, 더글러스는 뉴저지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하며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개들과의 교감을 통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몇 년 후 지원금이 점차 줄어들던 보호소에는 폐쇄 명령이 내려지고 더글러스는 개들과 함께 폐교에 새롭게 둥지를 튼다. 

수많은 개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한 더글러스에게 일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우연히 발견한 드랙바의 오디션을 통해 무대에 서게 되지만, 이는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한다. 어린 시절 학대와 차별의 기억을 안고 성인이 된 후 고립과 소외의 삶을 살아가는 더글러스에게 사회는 부조리와 불평등이 가득한 곳이다. 깊은 교감과 정교한 실행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개들과 함께 남몰래 벌여온 ‘부의 재분배’를 위한 절도 행각은, 이를 추적한 경찰이 드랙바를 찾음으로써 발각된다. 더욱 결정적인 사건은 그가 단골인 빨래방 마사의 부탁으로 지역 폭력조직과 갈등을 빚으며 벌어졌지만 말이다. 


영화는 더글러스의 생애를 조각조각 편집해 잇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서사만 놓고 봤을 때 다소 신파스럽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을 영화는, 짙은 분장과 화려한 복장의 드랙퀸 비주얼이나 얼핏 사이보그 같은 느낌을 주는 휠체어 등 강렬하고 기묘한 더글러스의 이미지를 통해 상쇄하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느낌이지만 개들과 교감하는 더글러스가 행복하게 보이지만은 않았기에, 일평생 인간 사회에서 배제된 채 살아온 그의 다른 존재로 거듭나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려나 영화에서 마지막 액션 씬 못지않게 힘을 준 부분은 더글러스가 드랙퀸으로서 처음 무대에 서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듣던 올드 팝과 보호시설에서 경험했던 연극 덕분에 얻은 기회라는 점에서, 좌절되었지만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의 유산이 더글러스에게 선사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론 몸에 새기면 무엇이든 훗날의 자산이 된다는 인생의 교훈을 뜬금없이 확인하는 느낌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칼렙 랜드리 존스가 직접 노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긴장과 불안으로 경직된 상태에서의 연기는 엄청 났고, 중성적인 음색도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 라마르틴” 자막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프랑스에서는 익히 알려진 문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개의 구원’을 믿지 못하는 관객을 향한 일종의 주문을 겸하는 거였을까 싶기도 하다. 견줄 데 없을 만큼 불행한 더글러스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의중을 알고 행동하는 개들. 배우도 개들도 훌륭한 연기였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는 어느 정도 몰입은 됐지만, 마지막에 혼자 먼저 감동한 에블린 때문에 좀 민망했다. 교회 앞 광장으로 걸어가는 더글러스의 “준비됐습니다”의 여운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실은 엔딩에 깔린 곡,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영화 [라 비앙 로즈]를 보며 이 노래가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알게 된 후에는 꼭 희화화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예능에서 마구잡이로 쓰이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한편 그 효과에 이미 익숙해지기도 한 터라 연출적으로 의도했을 비장함과 장중함이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쓰고 보니, 영화에 푹 빠져서 봤더라면 느끼지 않았을 아쉬움 같기도 하다.  

개도 뤽 베송도 크게 관심이 없지만 영화를 보러 간 건 [타인의 친절]을 보고 기억하게 된 칼렙 랜드리 존스 때문이었다. 되는 것 없이 안쓰러워 마음이 갔던 [타인의 친절]의 제프처럼 비사회적이지만, 독립적이고 나름 진취적인 인물이어선지 포스터나 영화 이미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벌크업된 근육질이어서 좀 놀랐다. 이 캐릭터 덕분에 증량한 거라면 다시 내가 처음 봤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고, 몇 년 전 부국제에서 보고 싶었지만 놓쳤던 [니트람]이 올해는 꼭 개봉했으면 좋겠다.  


1/30 cgv거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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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