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4. 2. 5. 15:15

 


홀리파는 건설 노동자다. 물처럼 술을 마시며 일하고, 캐비닛과 침대뿐인 현장 숙소에서 기거하는 그는 불금이 와도 설레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심드렁한 그와 달리 활기와 허세가 넘치는 성격의 동료 가라오케 씨의 강권으로 라이브 바를 찾은 어느 날, 홀리파의 눈에 한 여인이 들어온다. 

안사는 마트 노동자다. 피곤이 역력한 안색으로 보안 노동자의 감시를 무시하며 일하고 돌아온 집은 참 소박하다. 소파 겸 침대, 그 옆의 스탠드, 식탁 겸 책상, 그 위의 라디오, 작은 싱크대와 그 위의 오븐 정도가 가구와 가재도구의 전부처럼 보이는 단출한 살림이다. 동료와 함께 라이브 바를 찾은 어느 날,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여느 날처럼 일하다 마신 술이 책임자에게 발각되어 홀리파는 해고당했다. 유통기한을 넘긴 빵을 가방에 챙겼다가 보안 노동자에게 걸려 안사도 해고당했다. 낡은 자루가방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하는 짐을 가라오케 씨에게 맡기고 나온 홀리파는 길에서 잠을 청하고, 함께 잘린 의리의 동료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마트를 뒤로 한 안사는 당장 일자리 구하기에 나선다.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덤덤한 호감을 공유하며 함께 영화를 본다. 다음을 기약하며 전한 안사의 전화번호 쪽지는 홀리파의 손에서 거리로 흩날리고, 두 사람의 팍팍한 일상에 희미하게 점등됐던 그린라이트가 위태로워진다. 홀리파는 다른 현장에 일을 구하고 싸구려 숙소에 묵으며, 안사를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인터넷카페에서 찾은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간, 아마도 마약 거래 온상인 술집 주방에서 일을 시작한 안사의 마음 한 편에도 연락 없는 홀리파가 자리한다. 

둘은 극적으로 재회한다. 1인분의 살림으로 살아가는 안사는 홀리파를 집으로 초대하고 식기와 커트러리를 하나씩 더 구입한다. 로맨틱한 데이트를 위해 홀리파는 숙소 이웃이 흔쾌히 건넨 재킷을 빌려 입고 안사의 집을 방문한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이제야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는데, 알콜 중독인 홀리파와 알콜 중독으로 가족을 잃은 안사는 연락이 끊긴 동안의 안타까움이 무색한 간극만을 확인하고 만다. 

냉랭하게 헤어진 후 안사는 길에서 만난 안락사 위기의 개를 입양해 함께하지만, 잠시 마음을 흔들었던 홀리파의 자리는 그대로다. 아무래도 안사를 잊기 어려운 홀리파는 어느 밤 전화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안사에게 향하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시 연락 두절, 그러나 가라오케 씨 덕에 사고 소식을 알게 된 안사와 홀리파는 결국 다시 만난다. 절절한 가슴앓이도 뜨거운 고백도 눈물도 웃음도 없지만 묘하게 납득되는, 가난한 중년의 사랑이다. 


영화에는 두 버전의 배경음이 흐른다. 라디오를 켤 때마다 흘러나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민간인 사망 소식을 알리는 뉴스 멘트 그리고 다양한 감정과 일상의 디테일을 담은 가사의 노래들. 말수가 적은 주인공들의 대사보다 끊임없이 흐르는 노래들은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라디오 뉴스의 주파수를 돌리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팝, 가라오케 씨를 포함한 라이브 바 아마추어들의 옛 노래, 강렬하고 펑키한 밴드의 락 넘버까지 오롯한 존재감을 발하는 노래들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풍성한 요소다.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적은 수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고 가장 낡고 퇴락한 공간들이 배경이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의상이 거의 바뀌지 않는 인물들은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살아가며 감정 표현도 표정 변화도 최소한을 유지한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동기화한 듯 이어지는 노래들 중 “슬픔 속에서 태어나 환멸에 갇혀 살았”다는 가사가 기억에 남았는데, 사실 안사와 홀리파는 그조차 초월한 느낌을 주기도 해서 이상하게 부럽기도 했다. 

미니멀한 아날로그 세계에 bgm처럼 흐르는 전쟁 소식과 함께 전쟁 같은 일상을 견디는 북유럽 노동계급 남녀의 이야기가 내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건조하지만 감각적인 톤을 기본으로 간간이 내뿜는 쿨한 과장과 블랙 유머였다. 우회하는 듯 직진하는 감정에 담아 덤덤하게 내뱉는 진심이 구구절절하지 않아 좋았고, 음악 외의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제된 느낌이어서 신선하기도 했다. 심지어 러닝타임마저 81분에 불과하니, 은퇴를 번복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은 주인공들만큼이나 경지에 오른 모양이다. 
 
독보적인 리듬감의 이름,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처음 만난 건 오래 전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의 가다]를 통해서였다. 영화잡지나 책에서 활자로만 접했던 감독과 제목의 영화들이 필요 이상의 아우라를 걸치고 개봉하던 1990년대 중반,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예술영화들을 약간은 ‘영접’하듯 보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인지한 상태에서 처음 접하는 북유럽 영화였을 텐데, 어떤 에피소드나 장면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감독의 작품을 본 적이 없음에도 이 영화가 기다려졌던 건, 서대문에 살던 시절 방에 붙여놓았던 포스터 때문이기도 하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배우들의 이미지와 함께 쉽지 않은 감독의 이름이 각인되었으니 말이다. 

이케아와 오로라로 대표되는 북유럽 감성과 로망의 허를 찌르듯, 내내 누추하고 삭막한 헬싱키를 배경으로 이어질 듯 말 듯한 인연을 따라가던 영화의 마지막 뒷모습이 산뜻하고 좋았다. 마침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인지 긴가민가했던 이 모든 과정이 사랑인지 알 수 없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진 것 없고 나이 들고 비루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꽤 마음에 들었다. 어쩐지 낯설지 않았던 안사 역의 알마 포위스티가 영화 [토베 얀손]의 주인공 배우였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뒤늦게 반가웠다. 


1/4 cgv서면 art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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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