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1. 1. 8. 23:39


역대급 한파가 전국에 휘몰아쳤다 하고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통영도 춥기는 춥다. 어제 취소한 영화를 오늘 보려고 했으나 마침 업체 직접배송이어서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없었던 dvd 정리용 책장이 낮에 배송되었다. 영화는 내일로, 천지창조도 엿새 하고 하루 쉬었다는데 일주일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했으니 오늘은 정리나 하며 쉴까? 생각하는 순간 한파 어쩌고 외출 자제 어쩌고 하는 중대본 문자가 날아왔다. 그럼 나가줘야지. 난 마스크도 잘 쓰고 통영은 어차피 길에 사람도 별로 없고, 코로나19며 건강은 알아서 조심해야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중대본 문자가, 딱히 중요한 정보를 담은 것도 아니고 그냥 분위기 환기용 전체문자로 날아오는 건 정말 별로다. 암튼, 그리하여(?) 오늘은 가벼운 동네 산책으로 결정. 마침 얼마 전에 검색하다가 알게 된 목공방이 집 가까이 있다기에 실물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아파트 뒤편의 좁은 차도변에는 앞길과 달리 생활감이 느껴지는 작은 가게들이 많다. 케이블카, 루지와도 가까운 편이어서 카페도 있고 바이크대여점도 있다. 십년 전 처음 통영에 왔을 때 케이블카를 탔었는데, 예전이기도 하지만 차로 가는 길과 걷는 길은 기억도 풍경도 많이 다르다. 집 근처를 걷다 보면 케이블카니 루지를 알리는 이정표들을 자주 만나지만 저 뒤 어딘가에 있겠지 생각할 뿐, 그런데 지도앱에서 검색한 목공방 주소를 따라 걸어가니 정말 가까운 곳에 다 있어서 좀 놀랐다. 

뒷길로 봉평동에 갈 때 우회전을 하면서 맞은 편의 휑한 공터와 뭔가 조야한 시설물(쏘뤼)은 뭘까 얼핏 생각하며 지나쳤었는데... 오늘 보니 그 맞은 편의 휑한 공터는 케이블카파크랜드라는 곳이었고 뭔가 조야한 시설물은 통영어드벤처타워라는 곳이었다. 케이블카파크랜드에서 가장 인공적이지 않은 곳은 가운데 자리한 동산, 짧은 데크계단을 오르면 둘레와 정상으로 이어지는 갈래길을 따라 거적산책로가 깔려 있다. 둘레를 한 바퀴 천천히 도는 데에 십분이 안 걸렸고, 정상에 놓인 벤치에 앉으면 케이블카와 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는 케이블카 땅에는 루지구만' 생각하며 산책로를 걷다 보니 케이블카 탑승대 쪽 커다란 입간판에 정말 그렇게 써있어서 웃겼다. 가까이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향해 손이라도 흔들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대부분 비어 있었다. 

한 시간쯤 산책하며 동산을 오르내리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안쪽으로는 루지와 어드벤처타워, 캠핑장 이용객을 위한 푸드코트 등의 편의시설이 있었고 주민용인 듯한 '도남 100세 건강길'도 조성되어 있었다. 100세를 꿈꾸지는 않지만 도남동 주민으로서(실은 20분 걸린다기에) 걸어보았으나 산기슭으로 진입하려니 무척 스산하고 인적 없는 해질녘이어서 후달려 돌아나왔다. 오늘은 30세도 채 못갔지만 언젠가 동행이 생기면 완주해보기로 하고, 문을 닫은 통영어드벤처타워 앞 벤치에서 파크랜드를 전세 낸 듯 풍경을 즐겼다. 바로 집 뒤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새삼스러웠고, 그 사이에 자리잡은 빵집이며 과일가게를 보며 단골까진 몰라도 가끔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공방이 궁금해 나선 길이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가 한결 가까워진 기분. 다른 날보다 짧았지만 8일차 산책을 마쳤고, 돌아와서는 대충 넣어뒀던 dvd장 정리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진짜 영화 보러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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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