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2. 10. 9. 23:35



어렸을 적에 호암아트홀인가 어디에서 물방울 그림을 봤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희미한 기억이어서 정말로 직접 봤던 건지 애매한 기분도 들지만, 상영 소식을 접하고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처럼 영롱하고 투명한 그림을 보며 놀랐던 마음이 떠올랐고 '물방울'과 '김창열'은 나란한 단어로 익숙하기도 해서 궁금해졌다.

 

영화는 어느 산골 계곡물의 소용돌이와 저화질 속 어떤 폭발과 자욱한 연기가 오버랩되며 시작된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인트로 장면에는 남자 목소리의 프랑스어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주인공은 김창열 화가의 둘째 아들이자 공동 연출을 맡은 감독이다. 겹겹이 세워진 물방울 작품들과 함께 등장하는 노인이 된 화가,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늘 침묵하던 아버지를 회고하며 현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 속 화가의 움직임은 느리고 자주 클로즈업되는 무표정한 얼굴은 어두운데, 그가 머무는 공간에 내리쬐는 햇살과 이따금 보이는 어린 아이들의 활기와 대비적으로 느껴진다. 화가의 일상은 빛바랜 책을 읽고 수첩에 줄을 긋고 명상하고 차를 마시는 정적인 모습이다. 촬영하며 건네는 아들의 말에 답하기 위해 굳게 다문 입을 여는 화가는 고독과 침묵이 익숙한 사람의 분위기를 풍긴다. 

 

화가가 첫 번째 물방울을 그린 것은 1971년, 40대 초반에 뉴욕을 거쳐 정착한 프랑스에서였다고 한다. 생활을 겸하던 마구간 작업실에서 뒤집어 놓은 그림에 맺힌 물방울들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것을 경험하고 앞으로 자신이 그려야 할 것은 물방울이라고 다짐했다고. 화가는 이후 50년간 수많은 다양한 물방울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물방울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역사의 질곡을 피할 수 없었던 과거의 비극적인 경험과 닿아 있다.

 

1929년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화가는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렵사리 살아남아 남한에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서 자신의 혼을 담은 물방울을 만나기까지, 그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들이 어렸을 적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와 달리, 9년간 면벽수행하며 잠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자른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는 에피소드는 그가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어린 시절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늘 침묵하는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거리감을 고백하며, 영화 작업을 시작한 이유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화가는 물방울을 그리는 이유가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이고 모든 악과 불안을 물로 지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물방울만을 그려왔던 화가의 모습은 한결같았을 것이고 어린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는 기이하고 의문스러운 대상이었을 것 같다.

 

감독의 내레이션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림에만 몰두하며 구도자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는 화가가 작품으로 인한 혜택이나 특권을 거부하지는 않았고 인기나 유명세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화가가 이룬 거대한 성취를 나열하지 않는 영화는 기록으로 남은 영상을 통해, 해외의 전시회에서 팬들과 사진 촬영을 하거나 극진한 예우를 받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데 초반에 보여졌던 침잠하는 존재의 다른 모습이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시대의 아픔이 그에게 남긴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양가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수행하듯 그리는 삶도 인생일 수밖에 없고 누구도 생활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초월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느 밤 거실에서 화가는 아내와 함께 아들이 빔 화면으로 보여주는 고향의 모습을 본다. 그에게 고향은 숱한 죽음과 비참을 마주해야 했던 청년기 이전의 순수한 기억을 담지한 시공간, 그러나 호랑이가 나오는 맹산과 수영할 수 있는 강이 있었던 그곳에서 위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이 마른 강의 흔적뿐이다. 핵실험장으로 회자되는 풍계리,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되는 연기가 포말로 다시 물과 샘으로 바뀌는 모습의 정체도 그것이었다. 전쟁의 참화로 인한 상처와 숱한 죽음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반평생 넘게 물방울을 그려온 화가의 고향에, 이제는 미래의 전쟁 위험을 우려하게 만드는 핵실험장이 위치하고 있다.

 

오래 누적된 의구심과 부분적인 나름의 해답을 독백하는 아들의 내레이션과 이따금 등장하는 선문답 같은 부자간의 대화, 아이들이 잠시 등장할 때 말고는 내내 정적인 화면, 감독이 직접 작곡했다는데 지나고 보니 잘 기억나지 않는 은은한 음악 등이 어우러진 이 영화에는 시네마 에세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내심 감응보다는 정보를 원했던 것인지, 내게는 화가가 오십 년이나 물방울을 그린 이유를 알게 된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귀여운 손주와 가위바위보를 하는 장면 이후였던 것 같은데, 영화 말미에 화가는 인생에서 후회되는 것이 지나친 진지함이었다고 말한 부분이 아내와 나란히 누워 편안한 표정으로 노래를 읊조리던 장면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한 인간이 소화하기에 버거운 무게를 지고 생을 보냈던 예술가의 고뇌에서 그토록 생생한 물방울이 탄생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깊은 우물을 인식하며 성장한 아들은 우주로 날아간 허블 망원경의 다리에 맺힌 물방울을 통해서도 아버지의 물방울을 사유한다.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걸까. 만남을 통해 다른 물방울이 되는 물방울, 하나의 물방울을 그리는 일과 수천 수만의 물방울을 그리는 일을 통해 개별과 전체를 아우르는 화해와 치유를 희구했던 아버지의 예술과 정신이 아들의 카메라를 통해 그 비밀을 세상에 조금 내보인 영화라고 느껴졌다. 2016년에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는데 언젠가 가보게 된다면 영화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10/9 cgv서면 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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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