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뒤돌아보는 개의 시선이 슬프다.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집어든 건 아니고 그야말로 기대에 차서 이틀간의 연휴를 홀로 방구석에서 만끽하리라던 계획으로... 정말 두더지처럼 현관문 한 번 안 열고 이틀 째를 보내던 차 문득 외로워졌다. 혹은 심심해졌다. 화장실에 틀어박혀 담배를 피우다가, 문득 '외로운 개'가 떠올랐고 담뱃불을 던지고 책을 꺼내보니 '떠돌이 개'다. 좀 달랐구나. 미안하다, 개야. 하지만 떠도는 것과 외로운 것 중 뭐가 더 낫다고는 말할 수가 없겠다.
버림 받았다, 개는. 달리는 차창 밖으로 내던져진 개는 멀어져가는 주인의 차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달리다가 우두커니 길에 멈춰선다. 어디선가 다시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는지 두리번 고개짓을 하던 개는 곧 하릴없이 고개를 땅에 쳐박고 킁킁거리기도 하고 문득 고개를 들어 쫑긋 어딘가에 집중하기도 한다. 아니, 하는 것 같다. 차도에 뛰어든 개 때문에 사고가 나고... 외로우면 혹은 버림 받으면 사고를 치는구나, 라는 즉자적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꼭 물리적으로 화하지 않더라도, 사고는 일어난다. 암튼 조용히 아수라장이 된 사고현장, 검은 화염이 무섭게 번지는 그 현장을 떠나 개는 또 하염없이 간다. 바다에도 이르고 골목에도 이르고 망연한 하늘도 배경이 된다. 사람이나 개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버려지고 외로울 때 마음 가닿는 곳이. 결국 아이와 만나 친한 척을 잔뜩 하는 우리 떠돌이 개는 어떻게 되었을까. 개와 처음 대면한 아이의 표정은 조금 난감해 보였는데.
글자 하나 없는 이 책은 게다가 오로지 검거나 희거나 두 가지 색만을 지니고 있다. 젠장,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tom waits의 'time'을 repeat one 시켜놓고 앉아 그림을 보고 있자니, 노래와 그림 속의 개와 내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버려지고 상처받고 떠돈다는 것의 실재적 의미와 그저 방구석에서의 잠깐 무료함을 생으로 등치시키는 건 너무나 배부른 소리겠지만, 어디 개 뿐일까. 가끔은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버려지고 상처받고 떠도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6-01-31 23:13,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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