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나온 윤대녕의 책을 1월이 되어서야 읽었다. 윤대녕에 대한 나의 절절함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이렇게 확인한다. 한때 윤대녕은, 설명할 수 없는 내 속의 모든 혼란들이 가닿는 마지막 안착지였다. 이십대 중반과 후반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스무살만 같은 방황 속에 있던 내게 윤대녕은, 책장과 행간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와 모두 같지 않은 사람살이에 대해 나직하고 무감하게 말을 건네고는 했었다.
그러나 자로 잰 듯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고 더 이상 너울너울한 무언가를 좇아 몽상하고 망상하며 삶의 시간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삼십대 초반의 성인이자 심지어 금연을 결행중인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참 여전도 하다. 윤대녕은 언제나 같은 주제와 소재의 반복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를 만큼, 여전히 비슷한 색조의 공간 속에 비슷한 안색의 주인공들이 비슷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어슬렁대고 있다. 물론 일관되게 화자로 지칭된 '그 옆 사람'이 워낙에 독특한 아우라의 소유자여서 더 그런 느낌일 수도 있겠다.
불혹을 넘어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처럼 유난히 자전적인 느낌이 강한 글들을 보며 자꾸만 불필요한 상상으로 빠져들기도 했지만, 산문과 소설의 중간쯤이라는 작가의 말이 화자=작가라는 등식 성립에 일말의 진정제 역할을 해주었나보다. 군더더기 없이 흡인하는 그의 문장과 우연으로 점철되었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이야기와 비현실적이지만 가슴 설레는 정서를 다시 접하며, 그에 대한 중독의 전력을 가진 나는 오랫동안 뻣뻣하게 굳어있던 마음의 결에 여린 숨결이 불어넣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 뛰어들어 생활의 주최자가 되기로 결정한 이후, 손과 발과 머리에 밀려 뒷전이 된 심장이 오랜만에 다시 생동하는 느낌이랄까. 꽤 오랜 시간 동안 삶의 에너지였던 어떤 불가해한 관계들, 일상에 밀려 기억의 바닥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깔려있거나 말거나 했을 그것들에 대한 아련함과 절절함이 살아온다. 언젠가부터 추억으로 화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나 역시 많이 변한 탓이겠지.
역시 윤대녕, 이라는 약간의 흥분과 희열 속에, 오랜만에 눈과 심장과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함께 떨리는 독서를 마쳤다. 책장을 덮고 나니 삼십대 초반의 어느 겨울이다. 그러나 책의 여운이 안겨주는 상념에 젖어 삶이 아스라히 멀리 보이는 일 따위는 아마도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젊어서 한 때의 일'이라는 작가후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나마 젊어서 한 때 그를 만나 홀로 달뜨고 아프고 가슴 저렸던 추억들이 아주 잊혀지지는 않으리라는 안도감을 맛본다. 처음 만난 그 날 이후 오랜 동안 참으로 변함없는 그는, 나의 한 때를 증거해주는 내 것이 아닌 거울이다. 일상의 피곤에 젖어 살아가는 내게,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지 않을 만큼의 자극을 안겨주는 내 삶의 동창생인 그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한 가지, 그의 책이 더 이상 예쁘고 세련되지 않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05-01-13 03:25,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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