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24. 1. 4. 18:18



12월 중순에 다녀오면서 12월이니까 한 번 더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두 번은 좀 찔리니까 영화를 싸게 볼 수 있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잠정 결정했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꼭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주 수목에 볼 수 있는 회차는 아침 8시대, 고민하다가 연말에 지인도 오기로 했으니 1월에 두 번으로 잠정 결정. 덕분에 연초부터 부산에 다녀오는 길이다.  

게으른 일상을 보내면서도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면 침구나 쓰레기 버리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라, 12월이나 1월에 두 번의 부산행은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내겐 나름 일관되고 합리적인 결정인 셈이다. 지방소도시민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 놓치는 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됐지만, 한 달에 한 번 영화 몰아보기는 나름 중요한 의례다. 그마저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면 히키코모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니, 일상의 무기력을 환기해주는 영화에 고마워할 일이다. 

차가 생기기 전에는 많이 걸었는데 차가 생긴 후에는 내 운동보다 재작년에 두 번이나 방전됐던 차 운동이 더 급해졌다. 가장 좋은 건 부산에 갈 때 운전하는 거고, 올해는 도전해보려 하지만 아직은 무리. 부산 갈 때 걷기라도 많이 하자 생각하는데 사상터미널에서 서면까지 2시간 이상 걸리고, 영화 보기에도 체력이 필요한 터라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해봤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후 간판의 통영이 눈에 들어와서 걷는 동안 몇 번이나 마주칠까 했는데 두 번, 괜히 반가웠다. 

도보는 초행이라 지도앱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걸었는데, 절반 이상 버스 노선을 따라가다가 갈라지는 지름길이 새로웠다. 낯선 길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으슥한 대로변 끝에서 마주친 육교가 생각보다 높아 후달렸지만, 건너편으로 넘어가자 곧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잠깐의 걸음으로 마주한 낯익은 길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알고 모르고가 가져오는 마음의 차이를 새삼 느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잠시 쉬다가 영화관으로. 첫날의 두 편은 피아노 연주가 가득한 작품이었는데, 우연한 연쇄였지만 연륜이 극에 달한 거장과 이제 막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청년들의 대비가 느껴졌다. 문화가 있는 날 할인 타임이어서 객석이 제법 찼지만 비매너 관객이 없었던 덕에 편안하게 몰입하며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음 날 첫 영화는 어차피 선택지가 별로 없었지만 이따금 극장에서 본 스페인어권 영화들이 대부분 좋았기 때문에 선택했는데, 기대보단 그저 그랬다. 보고 싶었던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괜찮았으니 됐고,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 두 편을 본 게 뭔가 정갈한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도 달마다 거의 빠짐없이 부산에 다녀왔고 많은 영화를 봤는데 정리에 너무 게을렀다. 스포일러와 홍보 효과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 소개에서 시놉시스가 사라졌고, 내용 없이 느낌만 적어두면 나중에는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일천한 기억력으로 서사를 되짚어 정리하다 보면 진이 빠지는 악순환이 괴로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기억이 안 되면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는 성향이긴 해서 또 포스트는 다 만들어뒀는데, 올해는 너무 늦지 않게 정리하면서 지난 것들도 채워보려 한다. 이마저도 안 하면 안 사는 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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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