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21. 5. 31. 22:57

 

유일하게 잘하고 있는 매월 부산영화여행, 설과 추석 연휴에는 쉬기로 했으니 벌써 네 번째 꼬박 다녀왔다. 원래는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가는 거였지만, 4월과 5월은 목요일 오후에 듣는 강의가 있어 날짜는 유동적으로. 이번 여행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숙소 예약, [판소리복서]의 이병구에게 반해 엄태구 배우를 좋아하게 됐는데 난 넷플릭스 유저가 아니므로 [낙원의 밤]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어제오늘 부산에서 [낙원의 밤]을 포함해 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9시 반쯤 집을 나서서 10시 20분에 부산서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cgv서면의 영화시간표를 기다리는 일은 나름 흥미진진한데, 이번에는 롯데시네마의 무비싸다구로 [크루엘라]도 일요일 저녁에 예매를 해놓은 터여서 시간 맞추기가 조금 애매하였다. 하여, 어제는 12시 반에 [애플]을 보고 3시 체크인 가능한 숙소에서 조금 쉬었다가(원래 계획은 3시간쯤의 여유가 있으니 우암동도시숲이란 데를 다녀오는 것이었으나) 6시에 [크루엘라]를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애플]은 따로 기록해두고 싶을 만큼 좋았는데, 영화 보고 나온 직후 서울특파원이 전한 A의 소식에 너무 걱정이 되어 특파원과 통화하고 B와 통화하느라 뭔가 여운이 휘발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나름의 정리를 할 수 있었으면 싶다. [크루엘라]는 오랜만에 보는 디즈니 영화였는데, 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비주얼의 향연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언젠가도 느꼈지만 애플워치류를 차고 영화를 보는 이들의 머리 넘기기와 목 스트레칭은 극장에서 매우 주의해야 할 만한 일이라는 걸 심히 느꼈고, 앞의 옆자리 관객이 두 시간 넘게 반복하는 덕에 신경이 쓰여 끝나고 말해주고 말았다. 방해가 될 거라는 걸 모르고 하는 행동이었던 것 같아서 매우 친절하게, 하지만 애플워치류를 착용하고 영화관에 갔다면 누구든 뒷사람을 염두해주면 좋겠다.

 

1박 2일 내내 몸이 너무나 무겁고 뼈들이 뻑뻑하고 특히 허리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아파서 사실 힘이 들었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뒤쪽 허리뼈가 끊어질 것도 같고 이게 디스크가 터졌다는 증상일까 싶기도 했는데, 당장 어찌할 수는 없는 관계로 숙소에 와서는 잠시 쉬었다가 [낙원의 밤]을 보았다. 액션과 폭력 장면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안타깝게도 절반 이상이 그런 장면들이어서 좀 힘들었고, 나름 각을 잡고 집중해서 보았으나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나만의 진리를 재확인하는 시간. 영화를 보고 났더니 유난스레 힘든 몸은 생리를 시작하셨고, 5월의 마지막 날이니 좀 일찍 돌아가서 이것저것 정리하자고 다음 날 영화는 두 편만 보기로 한 게 참 잘한 일이 되었다. 저리고 쑤시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는 몸을 뒤척거리느라 새벽에 겨우 잠들었고 김창완 아저씨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동시에 틀어놓고 어수선하게 오전을 보내다가 숙소를 나왔다.

 

오늘의 영화는 [비커밍 아스트리드]와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둘 다 좋아하는 아트2관이었는데 내가 예약한 통로 건너 자리에는 두 번 모두 같은 할아버지가 앉아 상영 내내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드셨다. cgv명씨네에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희끗한 머리의 어르신을 마주칠 때면 괜히 반갑기도 하고 나중의 내 모습이 저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E06번을 차지하신 할아버지는 정말 괴로웠다.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관객이 3명뿐이어서 시작할 때 나는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그놈의 부스럭 소리는 어찌나 잘 들리던지. [쿠사마 야요이] 입장했을 때 E06에 데자뷰처럼 또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내심 기겁했으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자리를 옮겼고 역시나 부스럭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cgv서면도 포기하면 나는 더 물러날 곳이 없으므로, E06님이 설마 매일 출근하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잊어버릴 생각이다. 다음 달에 또 같은 공간에서 만나지는 않기를.

 

4시쯤 영화가 끝나고 5시쯤 출발하는 통영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영화 다섯 편 본 것 말고는 달리 한 일이 없지만, 그래도 참 피곤하여 멍 때리고 씻고 났더니 서울특파원님께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어제 A를 걱정하며 통화했던 B에게 오늘 정말 멘붕할 만한 사건이 생겼다는 소식, 너무 걱정이 됐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일단은 그냥 알고만 있기로 했는데 마음이 참 그렇다. 좀 아까 오늘의 시를 필사했는데 다시 읽고 옮겨적으니 새삼 참 좋아서 멀리 A와 B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 대신 한 달 전에 강구안 뒷골목에서 이 시를 함께 보며 '락단하고'를 해설대로 무릎까지 치며 읊어댔던 지인들과의 텔방에 전달. 감히 '시의 마음'을 빌어 내 좋아하는 이들에게 하나하나 전하고 싶었지만 차마 오글거려 말았고, 이 텔방이라도 있어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유월이 시작된다. 내일도 모래도 무비싸다구를 빌어 영화 한 편씩을 볼 예정인데 [슈퍼노바] 때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고,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알바를 내가 차질없이 잘 해나가기를 바라고, 인스타그램 공지를 보고 망설이다가 약간은 충동적으로 신청해 연락을 받은 글쓰고 책읽는 작은 프로젝트의 첫 만남이 유쾌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의왕 사는 지기의 집에서 하기로 한 책모임에 참여하고 그 김에 유월에는 부산 대신 수도권영화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음... 함께하는, 멘붕 중일 B 생각에 마음이 그렇네. 암튼, 음... 유월은 오월보다는 조금 덜 민망하고 아주 조금 더 부지런하게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본 영화와 읽은 책을, 욕심내지 않고 기록하는 것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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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