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2. 9. 12. 10:00

 



굉장한 웰메이드 로맨스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홍보글에 담긴 영화계 인사들의 찬사들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부유하는 율리에의 모습은 청춘기의 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누구나 생각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현실로 옮기고 안절부절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많이 유난스러워서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게 컸던 것 같다. 적당히 성공하고 나이든 남자 악셀과 함께하며 느끼는 그늘과 소외감을 표현하는 부분들은 익숙한 클리셰여서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헛헛한 마음으로 모르는 이들의 결혼 파티에 들어간 율리에와 눈이 맞은 에이빈드가 즉자적인 끌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는 장면들에서 서로의 소변 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좀 당황스러웠는데, 새로운 세대의 에로티시즘인지 북유럽 감성인지 그저 이 영화가 고심한 별난 에피소드인지 모르겠다. 파티드레스를 입고 홀로 담배를 피우는 첫 장면, 악셀이 커피를 내리는 사이 뛰쳐나간 율리에가 에이빈드와 키스하고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멎은 순간의 연출 정도는 인상적이었는데 2시간 넘는 영화에 이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고. 에이빈드의 파트너가 뭔가 부당하게 희화화되어 묘사되는 느낌이 들어 좀 불편했고, 율리에와 에이빈드 사이에 금세 찾아든 권태의 패턴은 너무 예측가능했고, 악셀의 투병은 개연성 없이 훅 들어온 느낌이어서 시큰둥했다. 나름 센스있고 유쾌한 멜로드라마를 기대했는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각각의 소제목이 붙은 열두 개의 챕터에 무척 계산된 에피소드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했을 것임에도 때로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그냥 십수 년에 한 번씩 이삼십 대의 청춘으로서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인데, 꿈과 낭만을 잃어버린 내가 너무 꼬장꼬장하게 본 것도 같지만... 놓칠까봐 우려했던 마음이 약간 억울해졌다. 실은 제목에도 약간 삐딱한 마음이 들었는데, 원제를 직역한 걸까 뭘까? 암튼 내게는 여러모로 물음표를 선사한 영화였다.  


9/10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김기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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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