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까지 '전선기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저자가 첫 장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도 하지만 소위 '종군기자'라 하면 어릴 적 교과서에서 만났던 시인 구상 정도 혹은 '라이프'지나 '퓰리처'상 같은 것들과 관련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었다. 게다가 염두에 없는 중에도 나의 무의식은, 전쟁 혹은 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막연히 어떤 호전적 기질을 가진 이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말하지 않음으로 명예롭게 사라져가고자 했다는 '전선기자 정문태'는 '벙어리의 변명'이라는 글로 서문을 연다. 거액의 계약금을 낼름 받아먹은 탓이라고 했지만... 전선의 기자를 시민사회가 파견한 전쟁의 감시자로 인식하고 있는 그가 두 개의 침략전쟁을 바라보며 느낀 분노와 불쾌감 같은 것이 책을 쓴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기록은 그가 세상을 향해 발신했던 기사들에서 미처 밝힐 수 없었던 전쟁의 이면을 세세히 증언한다.
어쩌면 오늘날의 전쟁보도는 삐라와 다를 바가 없다. 자본과 패권의 취사선택을 거친 일방적 보도가 무방비상태의 시민들에게 공습처럼 날아든다. 그것이 전지구적으로 양산되는 폭력의 대부분을 전담하는 미국과 결부되어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뒤늦게 읽고서 가슴이 뛰고 머리가 열리는 느낌이었다.(물론 금세 닫힐 것이다만) 필사를 하듯 타이핑을 해놓은 구절들을 몇 번이나 되짚어 읽으며 나의 무지와 외면의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책은 전선의 꽃, 전선의 부랑아들 / 나의 혁명, 나의 해방구 / 끝없는 전쟁 / 멀고 먼 전선 / 비밀전쟁 / 가슴에 묻은 이야기들 이라 소제목을 붙인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정문태라는 개인의 경험이자 '전쟁과 언론은 필연적으로 적대관계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전선기자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그의 기록은 서방언론 관점의 받아쓰기로 익숙해져 있었던 소외된 전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정치판의 비정함과 불량함을 절망적일만큼 잘 보여주고 있다.
'배반과 분열로 혁명도 투쟁도 모조리 날려버린 고단하고 처량한 인간 군상들'과 함께, 참호를 파고 들어가 기자인지 지원군인지 헷갈릴 만큼 스스로를 넣고 동고동락한 버마전선. 영원한 학교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그곳에서 전선기자로서의 걸음마를 뗀 그는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예멘, 코소보, 동티모르, 라오스, 캄보디아 등 수많은 전선을 옮겨다니며 중립과 객관이 아닌 '발에 채이는 사실'을 기록한다. 전쟁을 '국가'로 위장한 '정부'가 저지르는 가장 극단적인 '정치행위'로 파악하는 기자의 눈은, 포화와 죽음을 너머 인간의 삶과 욕망이 가장 비극적으로 아프게 충돌하는 살풍경과 부조리의 배면으로 향한다.
'목숨을 걸고 전선에 뛰어든 기자'라는 멋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는 살아 남아 자본과 언론이 쳐놓은 장막을 걷어내고 전쟁의 가려진 진실과 묻혀진 패악을 고발한다. '평화'라는 립서비스만으로 자국의 실익 없는 전쟁을 방치하는 국제사회와 무기력한 유엔을, 크메르 루주만을 광기 어린 학살주범으로 몰아넣고 '킬링필드'의 눈물로 왜곡해버린 캄보디아의 진실을, 스스로 정한 법마저 어기고 침공을 감행한 나토와 미국이 저지른 코소보 전쟁의 더러운 실체를, '부수적인 일'이라는 한 마디로 책임도 죽음도 외면하는 셀 수도 없는 미국의 양민학살들을, 그리고 책상머리의 상상력으로 그 많은 학살과 전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연구자들의 문화론을.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실존하는 숱한 죽음들 속에서 감정을 잃어가며 '더 이상 사람이기를 스스로에게 강박하지 않겠다는 주문'을 걸었던 버마전선의 뼈저린 반목과 분열의 최후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싸움에 대해서. 함부로 테러리스트라 불리운 저항의 전사들, 아프가니스탄의 전설이었던 '판쉴의 사자' 마수드와 최고지휘관의 희생을 명령 삼아 기꺼이 죽음으로 걸어가는 '블랙 타이거'에 대해서. 또 공황상태의 딜리를 예감하면서도 동티모르를 떠났던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서슴없이 '나는 개같은 기자였다'고,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자백한다.
스스로를 G형 피의 논리를 가진 인간이라 칭한 그의 글은, 박진감 넘치고 뜨겁다. 야만의 전쟁 한복판에서 보이지 않는 포화의 발신자인 세계 정치의 흐름을 감지하며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감식하는 일 못지않게, 그는 어떤 상황에서건 인간의 참모습을 지향하는 일에 대한 믿음과 공감을 깊이 드러낸다. 그가 보고 느끼고 기록한 글을 읽으며 나는, 목격자는 증언자가 되어야한다는 서경식 선생의 말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미디어를 통해 연출되고 중계되는 전쟁에서 '환상증폭기'가 되기를 거부하고 전선기자로서의 명예를 지키려는 그의 고투가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또 하나. 전선을 누비며 예리한 눈을 빛내는 그의 가슴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행간의 숨결에서 자주 느꼈다. 정말 많은 밑줄을 그으며 읽은 책이었는데,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부끄러움 못지않게 올곧게 자기 역할을 지켜나가는 한 인간에 대한 감동이 선연했다. 전투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전선을 가는 기자가 감내하는 고독한 목격과 끊임없는 자기 검열, 그 지난함의 산물인 이 책. 더욱 빛나는 이유는 저자가 스스로 탓하는 역사든 현상이든 뭐든 간에 '주류'와 '비주류'로 편가르기해 왔던 내 고약한 습성의 덕분이라고도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고 한 동안 그에게 뻑 갔었지만, 연정(?)을 키우기에는 너무나 비장한 기록이었으므로...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저자의 '가녀린' 고백으로 얌전히 마무리하기로 한다.
만남과 헤어짐, 그 일상적인 행위가 전선을 뛰는 내겐 늘 고역이었다. 정에 약한 나는 '만남이 곧 이별'이라는 이 바닥 생리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냉정함을 배워야 했고, 사람보다는 일을 먼저 생각하는 기계적 습성을 익혀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전선의 '냉랭함'이 내가 살고 남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거친 전선에 익숙해져 갈수록 대신 수많은 도시 친구들이 떠나갔다. 내 몸에 흐르는 찬 기운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이해를 구할 수도 없었던 나는 떠나는 도시 친구들을 붙들지 못했다. 그로부터 나는, 만남을 곧 이별로 여길 줄 아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 외톨이가 되고 만 나는 말 없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있는 전선으로 달려갔고, 그 전선에서 외로움을 달랬다.(176쪽)
2007-05-22 00:40, 알라딘
전선기자정문태전쟁취재16년의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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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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