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의 파열음으로 그칠 수 없는 목소리와 삶들의 진행형 후일담.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스쿨미투를 다룬 "여고괴담", 어린 시절 고향에서 당했던 성폭력의 상흔을 극복하고 발화하는 한 여성의 여정을 따라가는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여성 예술가들을 통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을 재조명하는 "이후의 시간", 여성들의 성 경험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그레이섹스" 등 네 편의 단편이 함께 상영되었다.
'미투'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배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외화된 사건과 이야기들의 고유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영상들이었다. 짧은 분량에 담긴 옴니버스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해서 하나의 소재를 더 깊이 다뤘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단편임에도 익명이나 블러 처리되어 등장하는 인물이 많았으니 이 정도도 대단한 노력의 결과였을 것 같다. '미투'와 관련한 현장 활동에 매진하느라 예술가로서, 영화감독으로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어떤 곳에서는 한때 세상을 집어삼키는 모든 것이었던 사건이 또 다른 곳에서는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투'의 경우 가해자뿐 아니라 확장된 가해자그룹이 형성하는 만만찮은 백래시가 세력화되어 있기도 하니, 결국 기록되는 것이 기억되고 전승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다큐는 무척 소중한 작업이 될 것 같다. 네 편의 감독도 영상에 등장하는 절대다수도 여성이었다는 것 역시 '미투'의 현재적 의미를 보여주는 단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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