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만화 영화로 본 기억이 있다. 이름으로만 들어본 여러 나라들이 정말로 있기는 있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던 그 시절에 세계일주라는 건 정말로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부럽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그 꿈같은 세계일주를 했다는 사람들이 내놓은 책도 꽤 여러 권 접하게 되었다. 부러운 일이다. 나도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일단 그들의 여행 기록이라도 먼저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다보니 아주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들의 여정은 가까운 일본에서 출발해 중국, 태국, 인도 등의 아시아 각국을 거쳐 유럽대륙과 터키, 이집트,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그리고 뉴질랜드와 호주까지 그야말로 세계를 아우른다. 한 권에 담기에는 일 년이라는 기간과 여행 지역이 꽤 방대하지만 이 책은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상에 많이 할애되어 있어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여행지에서 직접 적어내려간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생생한 현장성을 느끼게 해주고, 전문여행자가 아니어서 일어나는 실수들은 더 실감나고 재미있는 여행기를 만들어주었다.
부부가 번갈아 적어내려간 이야기는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담고 있는데, 혼자 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여정에서의 의견 충돌과 타지에 있다는 고립감에서 오는 감정의 기복들을 재치있게 극복해낸 이야기가 내게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또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동시대인으로서 느끼는 외국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건강한 사고를 갖고 있는 필자의 시선을 통해 내게도 생각해 볼 만한 것들로 와닿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신비감만을 부추기거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입장에서 독단적인 감상과 판단의 오류에 빠진다거나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지닌 평범한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여행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매력이다. 긴 시간의 여행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고 철이 들었다고해도 그들의 인생은 꽤 즐거울 것 같다.
2003-02-10 17:10, 알라딘
철이없으면사는게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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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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