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21. 23:04


"전선기자 정문태 전선취재 16년의 기록"은, 너무 멀리 있다고 느꼈던 저 세계의 고통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 최초의 책이었다. 오랜 시간 전선을 따르며 소외된 땅 잊혀진 사람들이 토해내는 단말마와 같은 통한을 담은 기자의 고발을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독자는 얼마 없을 것이다. 알수록 골치 아프고 심사 복잡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지와 무관심에의 반성은 그저 읽기라도 해야 알게나 된다는 그나마 팔자 편한 심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마음으로 집어들었다가 한 달이 넘도록 뇌리를 떠다니는 책이다.

분쟁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단 저자의 책은 소재와 주제가 정문태 기자의 책과 흡사하지만, 서술과 기술 방식은 매우 상이하다. 최근에 쓰여진 제 3세계의 현대사 교과서와 같은 구성과 대체로 가치판단을 유보한 냉정한 기술은, 흥분과 절망보다 오히려 담담한 관조를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차라리'라는 탄식이 붙었어야 옳은 제목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꽤나 명민한 현실주의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문적인 연구와 현장에의 경험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와 3부가 학문적 지향을 가진 세계에의 분석이라면, 2부는 그러한 분석을 가능케한 뼈아픈 참여관찰의 보고서다.

'전쟁과 인간, 국가'라는 제목이 붙은 1부에서 저자는 인간이 전쟁을 하는 이유와 냉전 이후의 국제 분쟁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다. 정치학자들이 유럽 근대국가의 기원으로 일컫는다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끝없이 이어진 전쟁과 인간 본성의 관계에 천착했던 철학자들의 탐구가 소개된다. 특히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대한 공감과 동시대적 유효성에 주목하면서 냉전 이후 국제 사회를 주도하는 미국의 패권으로부터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일은 유엔의 평화유지 기능 개혁을 통해 지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개별 국가의 주권보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보편화된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이 야기해 온 힘의 논리에 따른 국제 정치의 본질을 저자 역시 통감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과 같은 미친 미국에 대한 우려는 책 전반에 걸쳐 높은 수위로 지속된다. 

2부에서 저자가 찾은 분쟁지역은 국제 분쟁에 관한 어느 책을 펼쳐봐도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땅들의 목록이다. 팔레스타인, 이라크, 보스니아, 코소보,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시에라리온 등이 현재 진행형이라면, 캄보디아는 오랜 분쟁의 수습 끝에 남은 너무 깊은 상흔에 몸부림을 치는 땅이고 동티모르는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평화의 미래를 빌어주고픈 작은 나라다. 그리고 저자는 게바라의 혁명기지이자 최후의 피를 흘린 볼리비아와 혁명 쿠바의 멍에 관타나모 수용소 그리고 '아메리카 요새에 갇힌 슈퍼 파워'라는 제목으로 미국까지를 아우르며 분쟁 지역의 참상을 전한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언제나 진실'이라는 저자의 머리말이 의심할 수 없는 명제임이, 비록 포연도 절규도 없는 행간에서나마 절절하게 느껴진다.

매 장이 시작되는 페이지에는 분쟁지도와 함께 '누가 왜 싸우나, 국제사회의 노력은, 사망자는, 난민은, 지금은, 면적, 인구, 종교' 등의 그 지역 일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멀리 있다고 느끼는 만큼이나 단편적인 휘발성 독서로 만나게 되는 땅인 터라, 이렇게 집약된 전달이 효율적이고 편리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 한 국가의 면적, 인구, 종교 같은 항목과 동급으로 사망자와 난민이 등재될 만큼 이미 전시의 일상이 자리잡은 곳이라는 게 참으로 난망하다. 끝나지 않는 전쟁이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막막한 어둠을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3부의 제목은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도 친근한 단어가 되어버린 '테러리즘' 혹은 '테러와의 전쟁',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에 대한 고찰 그리고 자살폭탄테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무시로 테러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도 한국에서 폭발물 따위가 터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저자는 '테러'의 역사적 뿌리를 설명하며 혁명 이후의 무질서와 반혁명의 기운 차단을 위한 공포의 통치를 옹호했던 로베스피에르의 "테러는 정의이자 덕(virtue)이다."라는 단언과 함께,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과도기의 무정부주의 상태를 수습하기 위한 테러체제, 즉 공포정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에 관한 논의는, 솔직히 말장난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저자는 사뭇 진지하게 국제법과 갖은 전쟁 이론들을 섭렵하며 나름 두 개의 전쟁에 대한 고찰을 수행한다. 국제법에서 규정하는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전쟁'이라 일컫는다는 다소 맥빠지는 일반론을 확인하지만, '정의의 전쟁론'이 정의하는 전쟁의 불가피하고도 뚜렷한 이유와 수행 과정에서의 절제된 규범 준수, 신속한 상황 종결과 합리적 마무리 등의 원칙이 만약 현실에서 지켜지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정의의 전쟁과 관련한 저자의 작은 결론은, 어쨌거나 미국이 벌인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 따위는 도저히 정의롭지 않다는 당위의 확인이다.

에필로그를 대신하는 마지막 장은 '그 진한 고통의 내면세계'라는 부제를 붙인 자살폭탄테러에 관한 이야기다. 언론의 영향이 다분하겠지만, 은연 중 이슬람은 원래 그런가보다 했던 자폭테러가 실제로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채 30년이 안 된다고 한다. 이라크 역시 2003년 3월의 미군 침공 이전에는 단 한 건의 자폭테러도 없었다고 한다. 자폭테러를 '순교'라 주장하며, 하마스의 활동을 국가테러에 맞선 '테러의 균형'으로 정의하는 야신의 말이나, 어디에도 희망 없는 현실에 저항할 최초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자폭테러를 선택한다는 그들의 절망을 함부로 '테러'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테러'라고 인식하는 많은 것들은 입장의 차이에 따라 극명히 달라지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가 윤봉길이나 이봉창을 의사라고 부르듯이, 백범을 테러리스트라 했다해서 포탈이 들썩거리고 수십 개의 흥분 댓글이 달리듯이 말이다. 오히려 무엇이 테러인지를 밝히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자폭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을 끊임없는 질곡으로 내모는 현실이 지구 저 편 어디에서는 악몽처럼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다음 이야기는 정말이지 섬뜩하고도 가슴 아픈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미국과 서유럽의 젊은이들은 영국의 베컴 같은 프로 운동선수를 우러러본다. 이슬람의 젊은이들은 자살폭탄테러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인물을 '순교자'로 우러러본다. 이것이 21세기라는 동시대를 사는 지구촌 젊은이들의 큰 차이이다. 이슬람 세계에도 사이버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이슬람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전투적 웹 사이트들에는 지금 이라크와 이스라엘 등지에서 벌어져온 '영웅적 순교행위'(자살폭탄테러)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펼쳐졌다는 얘기로 가득하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무력감을 떨쳐내고 출구를 찾는 이슬람의 진지한 젊은이들은 그런 웹사이트에서 대안을 찾아내고 기꺼이 스스로를 던지기에 이른다.

책을 읽은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가끔 국제 뉴스와 마주칠 때면 구석구석 박혀있던 이야기의 편린들이 다시 떠오르고는 했다. '북한은 야만정권'이라 씨부려대는 부시의 보도를 접하면서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동계 올림픽의 도시 사라예보가 포화로 철저히 파괴된 불모의 땅이 된 것은 물론 'balkanize'(분열하다)라는 영어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만 지금의 발칸반도 상황이 떠올랐다. 아무리 지정학적 위치 어쩌고 해봐야, 무차별 공습의 기선 제압이 대세인 얍씰한 보신주의 전쟁판에서 한반도라고 언제까지나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반공교육의 오바가 다분했겠지만, 어린 시절 잦았던 등화관제 훈련과 심심찮게 날아오는 중공기와 더불어 울리던 싸이렌 그리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절망감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저자에게서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의 면모가 느껴진다. 단 한 순간도 전시를 살아보지 않은 주제에, 이따금 내가 꿈꾸는 어떤 변혁이나 무정부적인 세계에의 섣부른 낭만 따위는 아주 자근자근 뭉개졌다. 그것은 차마 민망하여 게바라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를 입지는 못하지만 눈에 띌 듯 말 듯 핸드폰 고리 정도는 달고 다녔던 소심한 동경과 애정 표현 따위, 혹은 자폭테러에 스러져간 마수드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발산하는 감동과 찬탄 따위를 완전 무색하게 만드는 냉정한 직시였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세계의 고통은 어쩌면, 우울한 나들이 중에 잘못 내딛은 발걸음으로 얻은 작은 상처만도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록수 부대의 파병과 관련한 반대여론, 분쟁 지역의 난민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국익'을 선점하는 일본 정부와 비정부기구의 활동 등을 예로 들면서 한국전쟁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도움과 한강의 기적, 올림픽 개최,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서 한국이 국제사회에 갚아야 할 빚 따위를 운운하는 대목은 정말이지 아연했지만... 나와는 다른 입장에서,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치열하게 세계의 평화와 공존을 고민하는 저자의 진지한 이야기는 충분히 값진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의 꿈 역시 현실에 고스란히 묻혀버릴지 모른다,고 나는 또 시건방지게 생각한다.


2007-09-27 02:46, 알라딘



나는평화를기원하지않는다국제분쟁전문가김재명의전선리포트
카테고리 정치/사회 > 국방/군사 > 전쟁사
지은이 김재명 (지형,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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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