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2. 9. 27. 15:15



오늘 오후 2시 부산국제영화제 일반상영작 예매 오픈, 원래 어제오늘 부산에 영화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추석연휴에 몇 편 보기도 했고 그 사이에 엄청나게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지는 않아 단정한 마음으로 예매에 집중하기 위해 계획을 취소했다. 통영에서는 카탈로그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오픈된 후 홈페이지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정리했고, 올해 나의 원픽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GV임을 확인했다. 외에도 GV가 있는 몇 편의 영화들 중 감독이나 배우가 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 있어서 체크해두고, 내가 보고 싶은 건 남들도 보고 싶기 마련이니 매진을 대비해 동시간대에 두어 작품씩을 더 골라 추려두었다.

 

얼마 전 모바일예매권 1분컷 매진을 경험했지만 그 전에 실물예매권 10장 세트를 구입하는 데에는 성공했고, 올해 발행분 10장에 작년분 1장 보너스가 담긴 우편물이 지난주에 도착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고이 모셔두었던 예매권 뒷면의 스크래치를 긁어내고 메모장에 번호를 옮겨 적고 예매사이트에 들어가 한 장 한 장 번호 확인까지 마쳤다. 1시 50분에 휴대폰 알림이 뜨니 괜히 좀 긴장이 되었는데, 예매사이트에 로그인해 처음 예매할 스케줄코드를 미리 입력해두고 잠시 기다리던 중 문득 떠올라 포털에서 '현재시간 초단위'를 검색해봤다. 1분컷 매진의 충격이 불러온 무의식의 대응이었던 것 같은데, 덕분에 1시 57분경부터 180초 가까이 온라인 명상이라도 하듯 오로지 바뀌는 숫자에만 주목하며 새삼 시간의 흐름이라는 걸 온전히 느낀 기분이다.

 

1시 59분 58초쯤까지 확인하고 예매창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어리둥절한 마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놀라운 오류가 반복적으로 펼쳐졌다. 결제수단으로 예매권을 선택하니 '적용되었습니다'까지는 나왔는데 그 다음 단계에서 총 결제금액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뜨고 예매 자체가 불가능했다. 몇 번을 재시도해보고 1666-9177로 전화도 해보았지만 당연히 연결은 안 되고, 잠시 멘붕이 왔다. 예매권 오류가 나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싶어 일단 신용카드 결제를 택했는데, 그 흔한 간편결제 메뉴도 없어서 한 편 예매할 때마다 카드번호에 유효기간, 비밀번호 앞 2자리, 주민번호 6자리를 매번 입력하고 개인정보 이용동의 전체선택 탭도 없어서 네 개의 탭을 각각 체크해줘야 했다. 덕분에 불필요하게 신용카드 번호가 외워졌는데 아무 의미가 없네.

 

'해당 상영작은 매진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로 원픽 예매 실패를 확인했고 미야케 쇼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했던 터라 약간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올해 내가 보러 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해서 괜한 찜찜함이 더해지기도 했는데, 취소표가 쉽게 나올 리 없지만 코드넘버 371을 기억하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넘겼다. 나름의 간절함 때문인지 동시간대의 다른 영화들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끝내 취소표가 나오지 않는다면 시작부터 공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타지키스탄 영화 [행운]을 예매했다. 말도 안 되지만 제목의 주술을 기대하며, 예매하고 보니 상영관도 7관이네? 하는 마음이 우습기는 하지만 결국 원픽을 놓치게 되더라도 괜찮은 시작이면 좋겠다.

 

아무려나, 적잖은 번호들를 한 땀 한 땀 입력해가며 예매를 마치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가보니 이미 난리가 났고 예매권 판매 사이트의 문의하기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항의와 함께 예매권 환불 요구부터 예매 초기화 후 재예매와 보상 요구 등 여러 의견들이 보인다. 예매권 사용이 아예 불가능하니 당연하게 카드로 예매한 내가 너무 초연했나 싶기도 하고, 오류 때문에 기대했던 영화들 다 놓쳤다는 하소연을 보니 일부 같은 처지로서 공감도 됐다. 2018년부터 예매권 사서 예매했었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오류가 왜 하필 '정상화' 선언을 한 올해에 일어났을까, 사전에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서 생긴 일일 테니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나름 대형사고라는 생각에 지금 동분서주하고 있을 누군가들이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단계단계마다 기대하며 기다렸던 오후가 생각지도 못한 당황과 유감으로 채워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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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