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나온 [당신에게 말을 건다]가 좋았었다. 나고자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던 청년의 고민, 유년기의 요람이었던 서점의 추억과 세태 변화에 따른 쇠락, 돌아온 고향에서 서점지기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경험하고 느끼는 소회들이 담담히 담겨 있는 책이었다. 평범한 단어들의 조합이고 책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밋밋하다는 느낌이었지만, 3대째 이어온 속초의 서점 이야기라기에 집어들었다가 푹 빠져 읽었고 오래 여운이 남았다.
2019년에는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와 [속초]를 읽었고, 2020년을 시작하며 저자의 도슨트를 참고해 2박 3일 속초 여행을 다녀왔었다. 책 덕분에 찾아간 동명동성당과 조양동 선사유적지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냈고, 등대전망대와 영금정에서 속초의 바다와 만났다. 동아서점을 향할 때는 마음이 살짝 두근거렸는데, 종합서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고 서가 사이에서 책을 정리하는 저자의 뒷모습과 계산대에서 마주한 저자의 아버지를 힐긋거리며 혼자만의 속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있다.
작은 동네책방을 꿈꾸던 내게 동아서점은 재방문의 기약 없이 잘 지내길 바라는 먼 책방이 되었지만, 감정과 문장의 온도가 참 마음에 들었던 저자의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영업이 끝나고 작은 불빛만을 켜둔 "밤의 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진지하게 몰입해 책을 고르는 청소년 독자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라앉은 내 마음 때문인지, 예전보다 수사가 많고 문장이 화려해진 느낌도 들었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자신의 실수와 욕심 같은 것들까지 기록하고 성찰하는 솔직함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만의 책방은 '흔한' 로망이다. 자기만의 무언가를 꿈꾸는 일은 어느 시대, 어느 세대에나 유효한 것 같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좇으며 보내는 시간의 안온함은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서 감당할 만한 작은 규모의 서점이 아니라면, 그 서점이 내 한 몸을 넘어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일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테다. 책에는 '그런' 서점의 지기로 살아가며 흐른 시간 만큼 쌓인 각종의 고단함과 보람이 녹아 있는데, 푸념 일색은 아니지만 읽으며 마음이 짠해지는 대목이 많았다.
나중에야 가족 회의를 통해 일요일을 휴무로 정했다지만, 휴일도 없이 하루의 절반을 서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몇 년간 지속하는 일은 대단해 보였다. 첫 책에도 서점의 일 중 책을 나르고 묶고 정리하는 과정의 큰 비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2만 권 규모의 장서를 관리하는 물리적인 노동에 고유의 색깔을 지닌 큐레이션 서점을 운영하기 위한 정신적인 노동, '유명세'와 함께 생겨났을 부가적인 상황들을 감히 생각해보면 더 그런 느낌이다. 그것이 곧 '성장'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고강도의 일상이다 싶었고, 하여 온가족이 걱정한다는 저자의 건강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졌다.
버거운 규칙 속에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린 딸을 안고 놀이터로 향하고, 함께 일하는 아내와 서점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투기도 하며, 다양한 요청을 안고 방문하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하루하루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게다. 그러나 부러 귀퉁이가 손상된 책을 사가는 속 깊은 손님, 홀로 '그림책 선생님' 삼아 배움을 건네받는 손님, 서점의 시간과 함께 청소년에서 성년이 된 손님, 서점을 배경으로 매년 '코닥 모먼트'를 남기는 손님 등 반복되는 일과를 다른 매일로 만들어주는 이들이 있었다. 읽으며 내가 다 고마운 마음이 되었다.
저자의 시선을 통과한 서점과 세상의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글 꼭지마다 소개되는 책들의 목록도 마음에 들었다. 서점지기 이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한 사람의 소중한 큐레이션을 건네받는 기분이었다. 커다란 서점을 어깨에 이고 사람에 치이며 만성이 된 경계심을 품고 평정심을 바라는 이야기들을 읽을 때 느꼈던 안타까움이 상쇄되고, 이런 작가와 책 들이 있어 가끔은 무너지는 그의 한 부분을 떠받쳐주고 있었구나 싶었다. 존재를 몰랐던 작가와 책, 이름과 제목만 익숙한 채 흘려보냈던 책,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걸 왜 몰랐었지 싶은 책의 제목들을 메모하며 언젠가 읽어보리라 생각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읽으며 가장 큰 느낌표를 동반한 문구는 "한 주 동안에만 출간되는 신간이 약 1260종(<2021년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20년 출간된 신간 종수가 6만 5792종. 이를 주 단위로 계산해보면 일주일에 약 1260종의 신간이 출간된 셈이다.)."(78쪽)이라는 부분이었다. 큐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한 내용인데, 온라인 서점의 메인페이지에 며칠씩 흐르다 사라지는 신간들과 페이지 곳곳에 각종 이벤트와 함께 명멸하는 책들이 떠올랐다. 구매에 비해 사용에 드는 노력과 시간이 현저히 많은 책이라는 독특한 상품의 운명도 그렇지만, 그렇게 쏟아져나오는 책들 중에 내 손에 닿고 끝까지 읽게 되는 책들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이 미쳤다.
동아서점에 갔을 때 책방의 베스트셀러 목록 첫 번째에 [당신에게 말을 건다]가 적혀 있는 걸 보았었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그 자리는 이 책이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저자와 가족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게 된 느낌과 함께, 세상으로 나간 책들 만큼이나 불특정다수의 접촉면을 유지하며 책방 문을 연 시간에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저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들여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건
2022.6.10초판1쇄 발행,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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