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보며 소개된 50권의 책 중 내가 읽은 걸 꼽아 보니 겨우 3권이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책들 중 내가 읽은 책은 공룡 발의 피나 될까 말까 하니 그러려니 했지만, 읽지 않은 책 중 제목과 저자를 보고 관심이 생기는 책도 절반 즈음에 그쳤다. 저자의 헌책방에 가본 적은 없지만 트윗은 가끔 접했던 터라 신간이 나왔다기에 약간의 호기심이 동한 선택이었는데, 취향이 많이 다른 것 같아 책을 괜히 샀나 싶기도 했다.
저자는 운영하는 헌책방 이름과 책을 좋아하는 ‘이상한’(1년에 책 한 권 이상을 사는) 사람을 호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 꼭지마다 한 권의 책에서 꼽은 문구를 제목으로 붙이고 그간의 삶에서 나온 자신만의 ‘독서론’을 펼치는 방식이다. 서평집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 바, 해당 꼭지의 타이틀로 꼽힌 책 자체에 대한 언급은 적고 저자의 독서에 대한 의견과 ‘지도 편달’이 초반부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마음가짐으로 의심, 관심, 호기심을 꼽고 자신이 책을 읽는 방식으로 속독을 포함해 최소 세 번은 읽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등이 초반에 언급하는 핵심이다.
기대와 달리 주장이 많다고 느꼈고 가르치려드는 느낌의 문체가 거슬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확실하다. “분명하다.” 같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반갑지 않았다.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책도 추천도 나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작가 혹은 타인의 상태나 행동을 추측할 때 ‘분명’이나 ‘확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모든 작가는” 같은 식의 단정적인 표현이 나올 때마다 의아해졌다. 나는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거나 독서가 일상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읽고 쓰기 위해 사는 것 같은 저자의 독서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목차와 소개를 상세히 살폈다면 굳이 사지 않았을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는 편이기도 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기 때문에 며칠 쉬었다가 다시 책장을 펼쳤는데, 덕분에 생각을 달리해 후반부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이미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헌책방 주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작가로 강력히 정체화하는 부분에서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에게 읽고 쓰는 일은 삶과 뗄 수 없는 것이고, 오랫동안 키워온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야망이 원형질처럼 자리하고 있다고 이해하니 한결 편안한 독서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와 저자의 차이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자가 엄청난 다독가이자 뼛속까지 작가라는 수긍이 된 후부터 전반부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번역을 읽는다’부터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책과 관련해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로 고민과 사유를 확장하는 모습이 미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작정 읽는다’에서는 수십 년간 그렇게 많은 책을 여러 차례 진심으로 읽어왔어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위안이 됐고, ‘쓰면서 읽는다’와 ‘겹쳐서 읽는다’에서 제안하는 독서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게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을 읽으며 읽지도 않은 [책만 읽는 바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는데, 독서가가 썼거나 독서가에 대해 쓴 책을 읽은 기억이 없어서인지 저자는 내가 아는 가장 놀라운 독서가가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잠을 줄여가며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기 위해 노력해왔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 속독을 배웠으며 고등학생 때 첫 문장부터 사로잡힌 카프카의 [변신]을 원서로 읽기 위해 독일어를 독학해 3년 만에 성공했다는 등의 에피소드는, 자랑하기 위해 늘어놓은 것은 아니겠지만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의 그를 만든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저자는 학교에 입학해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소음에 학대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으며 친구가 없었다고 쓰고 있고, 말하지 않고 대화를 나눴던 상상 속의 친구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사라졌다고 한다. 이 부분만 생각하면 무척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 쓴 것과 달리 책 곳곳에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남다르게 책을 읽고 토론에 열을 올렸던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혼자 읽고 되새기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겠지만 어린 시절 책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경험은 중요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책을 한 번 읽은 건 그냥 본 것에 불과하고, 내가 두 번 읽은 책은 많이 좋아하는 [티보가의 사람들] 정도가 기억날 뿐이니 그렇다면 나는 이제껏 읽은 책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조금 전 알게 된 독보적인 독서가의 기준에 주눅들 생각은 없지만, 바쁘게 일하면서도 열심히 책을 읽고 인상적인 부분에 표시를 해두고 그 부분을 엑셀 시트에 옮겨 정리하고 그를 바탕으로 나름의 서평을 쓰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도 일기니 독후감을 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꽤나 진심이었던 삼십 대 전후의 몇 년, 책과 많이 가까웠던 그 시간들 덕분에 어른이 된 후에도 읽기와 쓰기를 아예 내려놓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며 그러했던 생활이 그리워졌다.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무언가를 통해 고유하게 단단하고 유연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서 은은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많은 책을 여러 번 읽고 그만큼 써내면서 읽기와 쓰기를 통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필터를 가지게 된 사람이라니, ‘책은 참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책 읽기나 ‘정확한 번역’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앎에 다가서고 무지를 깨닫고 사유와 비움의 과정을 반복하는, 고요하고 뜨거운 일상이 조금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윤성근
2022.5.25초판인쇄•발행, 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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