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3. 9. 16. 00:27




'그 즈음 나는 매일매일 하나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요컨대 나라는 거울을 통해 매 순간 상대를 찾고 그리워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었다. 또한 상대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누구한테나 우주와의 경이로운 일체감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p72, "반달")


그는 여전히 외로움에 대해 쓴다. 오십줄에 들어선 나이에도 그의 인물들이 간구하는 것들은 이십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인생의 초창기 몇 해를 빼고는 일상이었을, 삶의 고독과 살아가는 일의 허무함 그러나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통과 결핍에 대해서. 익숙할 수 없는 것들에 쉽게 익숙해지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없는 듯 치부해버리는, 실은 일상의 가장 깊은 바닥에 포진한 외로움들을 불러내고 쓰고 또 쓴다. 읽으며 가슴이 뛰고 거울을 보는 것 같고 언젠가 나도 함께 있었던 것만 같은 몰입을 선사해주는, 매번 지겹도록 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쓸쓸한 위안을 선사해주는 작가. 윤대녕이 있어서 참 좋다.  

"자, 이제 그럼 몇 년 뒤에나 다시 만나십시다." 2013년 여름, 윤대녕
그가 남긴 수많은 책들의 작가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말 건네는 인사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기약 있는 인사가 주는 안도감, 어릴 적부터 마음을 나눠 띄엄띄엄 만나도 변함 없는 친구같은 그의 소설이 정말 고맙다. 두근두근 설레는 책읽기의 여운이 금세 가시지 않아 오랜만에 그의 이전 책들을 일별하다가... 다음 신작까지는 몇 년이 걸릴 테니 그 사이 "은어낚시통신"부터 다시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는 중. 그렇게 다시 만났을 때는 눈물나게 반가울 것 같다.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