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의 모임 책이었다. 차례가 된 추천인이 [딜리셔스]와 이 책을 후보에 올렸는데, 미식에 관한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 이 책에 한 표를 던지고 분위기를 몰았더니 선정이 되었다. 소개를 살펴보니 힐링소설 같아서 기대는 없었지만, 어쨌든 제목에 서점이 들어가니 읽어보면 도움이 되겠거니 싶었다. 역시나 힐링소설류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고 더 솔직히는 이런 책이 계속 출간되고 독자들의 반향을 얻는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런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이야기를 통한 위로라도 필요할 만큼 다들 외롭고 힘든 걸까, 나도 외롭고 힘들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점이 가장 강력한 독후감이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오모리 리카가 3년 만에 찾아가는 오사카행 열차 안에서 시작된다. 리카는 도쿄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5년 전 원하던 금융회사 대신 대형 출판유통회사 다이한에 합격했다. 매사에 자신감 없고 자기비하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소심한 성격인 데다, 동료들 대부분과 달리 책을 좋아하지도 많이 읽지도 않아 자격지심이 가득한 상태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박 3일의 신입사원 연수는 어쩔 줄 모르는 불편한 시간이었고, 설상가상 낯선 오사카 지사로 발령을 받는다. 평생을 살아온 도쿄와는 다른 거친 말투에 적응하며 “죄송해요”를 입에 달고, 리카는 낯선 지역에서 신입으로서의 일상을 시작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리카의 잔잔한 좌충우돌과 멘토가 되는 고바야시 서점 유미코와의 만남 그리고 성장과 새로운 사랑의 과정,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20대가 주인공일 때 예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서점과 출판업계가 배경이고 주인공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바야시 서점이 실재한다는 점 말고는 이 책만의 고유성이나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JR다치바나역 북쪽 상점가에서 대를 이어 영업 중인 고바야시 서점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과 리카의 에피소드를 픽션으로 엮어 논픽션 노블을 완성했다는데, 차라리 그냥 서점 취재기였다면 나았겠다 싶었다.
극과 극인 리카와 유미코의 성향 대비는 작위적이고 길게 반복되는 유미코의 이야기가 어딘가에선 아예 "긴 이야기가 될 거야" 라는 예고와 함께 시작되어 지레 지겨움을 선사했다. 나이차가 크겠지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대뜸 반말을 하는 것도 불편했고, 작정하고 풀어놓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근성과 열정으로 이겨내고 말았다는 식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유미코의 조언과 함께 성장하며 오사카 분에츠도 서점 도지마점에서 이런저런 이벤트를 기획해 성공하는 리카의 에피소드들 역시 거의 예측가능한 내용들이었다. 리카의 아이디어 개진과 야나기하라 점장의 우려, 가만히 듣고 있던 서점원 미시마의 지지에 이어 이벤트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너무 안이한 내용과 전개여서 읽는 내가 민망했다.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상태에서 리카가 만나는 이들 대다수가 실제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고 고마웠거나 마음에 드는 말을 나눈 상대가 각별하게 기억되는 점 정도가, 어렵사리 찾아낸 공감할 만한 부분이었다. 납작하고 평면적으로 그려낸 리카 캐릭터의 특성 때문에 고바야시 서점과 유미코에 대한 그의 호감이 수긍되는 지점도 있었지만, 어차피 절반은 픽션인데 캐릭터와 사건 구성에 조금 더 신경썼다면 나았을까 싶기도 했으나 불필요한 오지랖이겠고. 과거 출판유통계와 동네서점 생태계의 현실이나 적극적인 영업으로 객관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작은 책방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유의미함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자기계발서와 뻔뻔하고 유치한 힐링소설을 대충 섞은 느낌이어서 읽으며 자주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가와카미 데쓰야•송지현 옮김
2022.8.31초판발행 9.16.1판2쇄, 현익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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