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2. 10. 31. 15:47

 


짧은 삶을 살았던 리버 피닉스의 일대기 그리고 부제대로 '그의 시대 할리우드'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본 [아이다호]의 강렬함으로 지금껏 내게 리버 피닉스는 마이크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편하게 기억하는 왜곡된 방식이지만, 둘을 동일시하며 외롭고 황량한 길에 버려졌던 모습을 오래 앓았고 이맘 때가 되면 그를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올해 역시 10월 말이 다가오며 리버 피닉스가 생각났고 출간 소식에 반색하며 사둔 책을 펼쳤다. 

 

리버 피닉스에게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망하게도 그의 요절이지만 [아이다호]나 [허공에의 질주]에서의 모습이 없었다면 잠시 안타까워하고 잊었을 것이다. 이른 죽음에 깊이 빠져든 것에 비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어린 시절 종교 공동체에서 자랐고 동생들과 길에서 공연한 수입으로 가족이 생활을 했다거나, 영화 못지 않게 음악에도 열정과 재능이 있었다거나, 영화에 함께 출연한 상대 배우와 실제 연인 관계였다거나 하는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가 전부였으니까. 뒤늦게 알게된 독특한 성장기가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했었는데, 사후의 정보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종합한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리버 피닉스가 세상을 떠난 1993년 10월 31일 새벽의 바이퍼 룸 앞 도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그의 출생 이전 부모의 젊은 시절과 당시 미국 사회로 돌아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함께 진행시킨다. 히피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알린 두네츠와 고아로 자란 존 리 보텀의 만남, 페퍼민트 농장 히피 공동체에서의 리버 주드 보텀의 탄생, 부모의 신념에 따라 '칠드런 오브 갓'의 일원으로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보낸 남매들의 어린 시절과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설명은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삶을 통해 1970년대 미국 하위문화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이었다. 

 

책은 1부에서 6부까지 전체적으로 리버 피닉스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면서, 당시 노래와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따온 키워드를 타이틀로 붙인 다양한 내용의 챕터들로 모자이크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일찍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주목받고 스타가 된 리버 피닉스에 대한 많은 자료들과 친구와 지인, 비즈니스 관련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면밀하고 성의 있게 정리해 그의 삶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큐알코드를 통해 동생들과 공연하던 어린 시절 모습부터 대통령 후보 클린턴 지지 무대에 섰던 미처 몰랐던 모습까지, 짧게나마 영상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반가웠다. 

 

어린 시절 남미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배에서 낚시 장면을 보고 동물을 먹기 않기로 결심한 소년은 죽을 때까지 채식했고 경제적 능력이 생긴 후에는 아마존 개발을 막기 위해 열대우림을 사들였다고 한다. 동물과 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어릴 적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는 배우였던 리버 피닉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은 남다른 양육 방식과 환경을 선사한 부모일 텐데, 한편 가족은 물론 그들이 꾸린 작은 공동체까지 부양하는 짐을 너무 일찍부터 맏아들이 홀로 지도록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 몽상가에 가까운 부모의 방임과 메시아 컴플렉스를 내면화한 소년 가장, 리버 피닉스가 너무 어릴 적부터 추앙받으며 착취당한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리버 피닉스의 콜 잇 러브]에서의 그가 망가진 상태였다는 건 미처 몰랐고 뮤지션 역할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음악은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하고 큰 부분이었다. 가족 모두가 '칠드런 오브 갓'과 단절한 후에도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신념을 유지했던 것 같고, 플로리다의 게인즈빌로 거처를 옮긴 후에는 '알레카스 애틱'이라는 밴드를 꾸려 오래 활동했다. 영화 촬영 일정에 따라 영향을 받았지만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를 하고 결과적으로 어그러졌지만 음반 발매를 위한 에이전시와의 계약도 있었고, 무엇보다 밴드 활동에 대한 리버 피닉스의 의지와 열정이 컸다고. 어렸을 적부터 자기 몸보다 더 큰 기타를 메고 거리 공연을 하는 일상, 학교 생활이나 또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경험이 없었던 점도 음악이 그의 삶에 차지하는 깊이와 비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적절하게 붙인 부제처럼 1980~90년대의 동료 배우와 뮤지션 들의 두각과 활동, 당시의 대중문화계 현장과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대해서도 책은 기술하고 있다. 에단 호크, 브래드 피트, 조니 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부상과 이력이 리버 피닉스의 시절과 함께 등장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레드핫칠리페퍼스와 펄잼 이후의 너바나까지 시대의 배경음악을 바꾼 뮤지션들이 언급되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리버 피닉스가 독립적인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고 영화계에서 우정을 나눈 이들과의 또 작품 촬영과 관련해 소개되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고,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신념과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의 괴리가 부각되는 부분들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한때 무척 부러워했던 마사 클림튼과 사만다 마티스의 말들도 인상적이었다. 리버 피닉스가 죽고 세월이 흐른 뒤의 인터뷰이지만 그들은 명민하고 지혜로운 여성들로 느껴졌고, 리버 피닉스가 마약을 나누며 어울렸던 지인들보다 그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했다면 혹시 달라졌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바이퍼 룸에 가지 않았다면, 어떤 뮤지션이 건넨 하이볼을 마시지 않았다면, 조금 더 일찍 911을 불렀다면, 혹시 우리는 에단 호크처럼 스크린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반갑게 만날 수 있었을까. 혹은 [토탈 이클립스]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할리우드에서 사라진 자유인 리버 피닉스를 가끔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의 마지막 시간들을 읽으며 부질없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저자는 요절한 스타에 대한 신화화나 찬탄 대신 그의 삶의 '객관적' 사실들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이고 상황적인 맥락을 함께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주변 인물들이 증언하는 리버 피닉스는 관계의 경험과 시선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여느 평전을 읽을 때처럼 고인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싶지만 한편 그가 밝히고 싶지 않았을 부분들까지 알게 되는 것 같아 불편한 양가감정을 피할 수는 없었다. 리버 피닉스가 가진 독보적인 개성과 존재감은 인정하면서도 시니컬한 문체로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는 저자의 태도 덕에 더욱 그랬던 것 같은데, 삶보다 죽음 이후 더 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저자는 마지막에 리버 피닉스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적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인생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고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멀리서 또 내 기억 속에서 명멸했던 인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책장을 덮고서는 [보이후드]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에 비하면 너무 슬프고 애잔한 결말이지만 말이다. 어떤 경우든 스물 셋은 삶을 마감하기에 이른 나이다. 흡인력 있게 잘생긴 외모와 탁월한 연기력은 독보적이었지만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쩌면 평균치보다 조금 더 순수하고 여렸던,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너무 일찍부터 너무 많이 짊어졌던 한 존재가 어떻게 흔들리고 무너지고 결국 사라졌는지를 아프게 목도하는 독서였다. 삶이든 죽음이든 타인의 것을 마음에 담을 때 대상화는 불가피하고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10월이 되면 한 번씩 꺼내보게 될 것 같다. 출간 자체가 고마운 책이다. 


51쪽 각주 23, 티모시 리어리 사망년도 1970 > 1996
268쪽 2문단 2줄, 날짜를 새며 > 세며
339쪽 2문단 7줄, 미소년 매우가 > 배우가 




개빈 에드워즈•신윤진 옮김 
2022.2.20초판1쇄,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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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