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글을 이어 읽다가, 나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1월 18일, 오래 그리던 통영으로 이사를 왔다. 12월 5일부터 3주간은 처리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과 집안일도 있어 안산의 지인집에 머물렀고, 12월 28일 통영시민이 되었다. 7년 만의 이사와 정리는 적잖이 많은 일거리를 남겼고, 어지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마침 할 일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나는 자꾸만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사 후 집을 떠나 있었던 시간을 빼도 통영에서의 시간이 3주 이상인데 그 사이 내가 집에서 한 일이라고는 <티보가의 사람들>을 4권 후반까지 다시 읽은 것과 <지붕 뚫고 하이킥>을 126회까지 다시 본 것. 그 외에는 매일 먹고 자고 담배 피우고 라디오 듣고 멍 때리고 집 정리하고 휴대폰 들여다 보고, 이따금 처리해야 할 일을 위해 외출하는 정도가 다였다.
이사하고 짐과 집을 정리하면서 라디오를 다시 만났다. 어렸을 때 정말로 라디오를 좋아했다. 국민학교 졸업 선물로 엄마가 사준 빨간 라디오가 시작이었다. mbc나 kbs에서 김희애나 박중훈이 dj를 하던 밤의 프로그램들을 주로 들었고, 중학교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 주파수를 돌리다가 우연히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게 됐는데 cbs <꿈과 음악 사이에>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직도 책장에 꽂혀 있는, 이후 책으로 묶여나온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시한부 암환자 민초희 언니의 사연이 이따금 소개되고 dj도 청취자들도 같은 응원의 마음이었을 그 방송은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이후 <신해철의 밤의 디스크쇼>, 김광석 아저씨가 진행하는 bbs <밤의 창가에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유희열의 음악도시>, <김장훈의 우리들>, <김영하의 책하고 놀자> 등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라디오를 듣지 않고 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2002년 이후 완전히 잊고 지냈다.
tv 연결을 하지 않으니 적막한 집, 짐 정리를 하는 와중에 cd나 lp를 골라 음악을 들을 여유는 없고 반복되는 휴대폰의 플레이리스트가 아무 의미 없이 들리던 순간 라디오를 떠올렸다. 김창완 아저씨가 어딘가에서 dj를 하고 있지 않을까? sbs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고릴라앱을 깔았고, 순전히 김창완 아저씨 덕분에 대략 9시 이전에는 일어나 오프닝부터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가 끝나면 <박하선의 씨네타운>, 그 다음엔 주파수를 돌려 <윤고은의 ebs 북카페>,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 밤 10시 이후에는 가끔 <정형석의 밤의 라디오>를 듣는다. 그런 패턴으로 라디오를 듣다 보니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려 7시간을 라디오에 매여 있는 꼴이 되는 것 같아 요즘엔 11시부터 2시까지는 가끔 패스하기도 한다.
이사 전 몇 번의 여행에서 어디를 가든 가까이에, 눈 앞에 바다가 있는 통영 걷기가 참 좋았지만 이제 살게 됐다고 생각하니 절실한 느낌이 없어졌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바다가 보이고, 비록 방범창살이 시야를 가리지만 작은 방 창문 너머에도 바다가 있으니 종일 11층을 벗어나지 않는 날이 많았다. 게다가 참 좋은 라디오까지 다시 만났으니, 그 핑계로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뭉개는 시간이 더 편안해졌다.
새해를 앞두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늘 실전보다는 준비에 공을 들이고, 어쩌면 그렇게 '진짜'를 유예하는 습관이 일상 자체가 되어버린 걸 언제까지고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첫날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의 시간. 이제 뭘할까 잠시 멍 때리다가 문득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와 달리 망설임 대신 대충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물론 1월 1일이었기에 가능했던 외출이다. 그리고 사흘째인 오늘까지, 고작 3일이고 긴 시간은 아니지만 산책을 계속하고 있다. 매일 이어가고 싶은 일이고, 좀은 충동적으로 카테고리를 만들었지만 그 덕분에 이렇게라도 '매일 쓰기'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