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너무 많았던 것일까? 몰바니아, 조금은 피곤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리 많이 다녀보지는 못했고, 어딘가 낯선 곳과 새로운 길도 좋아하지만 여행안내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참 떠나고 싶어할 때 알라딘 메인 화면에 뜬 이 책이 내 눈에는 대문짝만하게 보여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마침 오랜만에 들러본 김작가의 소장함에도 들어있기에, 나도 모르게 속에서 기대가 증폭되었다보다. 하여... 손에 들어온 다음 바로 읽고 싶었지만, 부러 어딘가 떠나는 길에 즐거운 상상을 보태 읽어주리라~ 하며 휴가길 대전행의 동반자로 골라들었다.
일단 기획은 신선하다. 론리플래닛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대체로 거기서 거기인 여행정보 책자들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자니 초반에는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혼자 가는 길인 것이 아쉬울 만큼, 읽다보면 옆 사람 한 대 툭 치며 이거 봐라~ 하고 싶을만큼의 위트와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 여행지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참으로 일관되게 구성해놓은 신소리들이 청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이야기들. 누군가 웃음은 반복과 반전이 만들어낸다고도 했었지만, 조금 질리기 시작했다.
동유럽에 어딘가에 자리한, 세상에 없는 작고 황폐한 나라. 기존의 여행서들이 보여왔던 정보의 독점에 기반한 권위주의를 매우 당황스러운 방식으로 격파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왕 뒤집는 거 조금 따스하게 뒤집을 수는 없었을까. 초반부에 나를 매료시켰던 빛나는(?) 유머들은, 2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채우며 매번 신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중반을 넘기며 나는 그들이 구사하는 유머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하찮은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그 위악과 그 조소가 마침내 지겨워졌다. 물론 내 지식의 짧음과 내 사유의 얕음으로, 여러 명의 저자들이 나름 속 깊은 함의를 보태어 적어놓은 것들을 많이 놓쳤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비틀고 뒤집고 조소하는 거, 힘없는 땅에 대한 오리엔탈리즘보다는 문명의 중심인 양 오만을 떠는 비싼 땅에 대한 외곬의 개김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촌스럽게도 따스하고 인간적인 거 좋아하는 내게는, 딱 절반만 좋았던 여행이었다.
2005-08-20 01:41, 알라딘
|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담없는 만남, 마르크스의 재림 (0) | 2011.05.15 |
---|---|
from 'to cats' (0) | 2011.05.15 |
좋아 좋아 (0) | 2011.05.15 |
마이너리티 카리스마에 박수를 (0) | 2011.05.15 |
'새벽의 집' 공동체, 아름다운 기록 (0) | 2011.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