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이중섭이 통영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포커스를 맞춘 책으로, '이중섭의 통영을 찾아서', '이중섭과 통영의 예술인들', '명사들이 증언하는 이중섭', '통영시절의 작품', '이중섭 이야기' 등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0년대 중반 이중섭이 통영에 머물 당시 교류한 서양화가 김용주,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 등 고인이 된 통영 예술인들과의 인연과 일화 및 이중섭 관련 문학 작품들이 실려 있고, 생전의 이중섭과 통영에서 교류했던 화가 전혁림, 옻칠예술가 김성수, 김용주의 제자였던 화가 박종석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들이 주요하게 담겨 있다.
"통영시절은 천재 화가 이중섭의 르네상스였다"는 앞표지의 문장이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한 마디다. 저자는 통영에서 나고자란 공무원으로서 고향과 이중섭에 대한 애정으로 통영에서의 이중섭에 대한 누락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특히 이중섭 관련 저서의 연보에서 1953년 10~11월 경부터 다음 해 5월까지 반 년 남짓으로 기록되어 있는 통영 체류 기간이 사실은 1952년 늦은 봄이나 여름부터 2년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주력하고, 통영에서 이중섭이 풍경화 작품을 많이 그렸고 그것은 전쟁의 포화에서 비껴 있었던 통영의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가를 존중한 당시 유력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영에 온 시기에 대한 부분은 주로 당시 그를 만났던 이들의 인터뷰 내용, 통영에서 그린 풍경화 작품들 속 계절감("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통영 충렬사 풍경", "까치가 있는 풍경",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 "통영 앞바다" 등에 드러난 겨울 및 "복사꽃이 핀 마을", "통영 수원지", "푸른 언덕" 등에서 표현된 봄과 초여름 정경) 그리고 이 작품들이 1953년 12월경 통영 중앙동 성림다방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규명한다. 대다수 기록대로 이중섭이 1953년 10~11월에 통영에 왔다면 풍경화에 담긴 통영의 봄, 여름, 겨울과 약 40점의 작업을 한두 달 만에 완성했어야 하는데, 이는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4년 6월 돌베개에서 출간된 <이중섭 평전> 속 통영 체류 관련 내용("이중섭은 1953년 11월부터 1954년 5월까지 통영에 머물렀다. 이 시절 이중섭의 거처는 문화동 세병관 앞 경상남도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와 중앙동 우체국 부근에 있는 동원여관이었다.") 관련해, 경상남도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의 소재가 1951년 8월부터 1952년 12월까지 문화동이었다가 현재 남아 있는 항남동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통영 도착 시기에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 책의 초판이 2010년이었으니 이후의 책 집필에서 참고할 법도 한데 이 부분이 왜 정정되지 않았는지 약간 의아하기는 하다. 읽지는 못했지만 서점에서 본 기억으로 돌베개판 평전은 무척 두꺼운 벽돌책이었고 당시까지의 이중섭 기록을 집대성하는 의미의 작업이었을 것도 같은데, '전문가'에 의한 입증이 아니라고 여겼다 해도 하나의 설이나 주장으로 부기될 법은 하지 않았을까.
모든 내용에 수긍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중섭의 통영 체류 시기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주장은 설득력 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설득력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정정이 필요한 부분이고, 저자가 인터뷰와 확인 작업 등으로 밝혀내고 정리한 통영 시절의 일화들이 이중섭의 역사에 온전히 편입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축소되고 비가시화된 이중섭의 통영 시절이 제대로 다루어지는 것은 미술사의 거장으로서든 한 사람의 생애라는 측면에서든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책의 관점과 접근은 부담스럽고 아쉬웠다.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방 소도시에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인물이나 흔적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알지만, 책에는 독자가 판단하고 수용할 여지나 여백 없이 ‘통영과 이중섭’의 관계의 중요성, ‘통영 시절이 이중섭의 르네상스’였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지나친 강조가 빈약한 도구화로 느껴지거나 오히려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책을 읽은 계기 역시 도서관 강의였다. 예전에 여행 왔을 때 지금은 폐업한 걸로 보이는 강구안의 한 가게에서 이 책을 보았지만 뚜벅이 여행자로서 짐이 부담스러워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발간한 두 권의 통영 관련 책을 가지고 있고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의 보유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의로 그를 접하고 처음으로 책도 읽게 된 셈인데, 책 역시 강의와 무척 비슷한 느낌이어서 약간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았다. 성정이나 성향의 다름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나 화자가 먼저 경탄하고 연민하고 흥분할 때 독자나 청자의 공감은 반감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부족한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엄청나게 노력했겠구나 싶은 책이었는데, 깨달음과 찬탄을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감춰졌거나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담담하게 기술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김순철
2010.6.4초판 2018.9.6개정판, 도서출판 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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