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여는 집>과 <십년간>의 아슴한 기억 속에 반가운 이름, 방현석을 만났다. <아름다운 저항>, 제목 만으로 그는 여전히 어두운 시대 속에서 노동의 희망찾기에 여념이 없으리라는 반가운 믿음이 되살아난다.
제대로 된 노동 한번 해 본 경험 없이 스물여섯을 살고 있는 나의 삶에서, 한 세기에 걸친 노동의 역사 그 저항의 역사가 얼마나 큰 마음의 반향을 일으킬는지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런지 조금 의구스럽기도 하고 다소간 부끄럽기도 했으나, 책을 읽어가며 사실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희망'이라는 화두 하나로 오늘의 현실이 그렇게도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상황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미 어디선가 한 번은 활자로 만났던 그 영웅적이고 위대한 투쟁의 역사는 분명 눈물 겹게 아름답고 소름이 돋도록 벅찬 것이기는 했지만, 현장에 발 담그고 있지 않은 때문인지 지난 투쟁을 승리적으로 평가하고 타산지석의 정신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심정적 동감과는 별개로 사실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물론 어둡고 고단한 시대, 집단과 대의보다는 개인의 안락한 삶을 위한 이기에 함몰된 오늘의 삶에서 '희망'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서 소외되고 낮은 자들이 내일의 빛을 볼 수 있을까마는,
그 '희망'과 빛을 겨누어 지난 투쟁의 성과들을 다시 한 번 펼칠 양이면 차라리(?) 투쟁을 모르고 저항을 모르는 일단의 대중 독자들과의 낮은 공감이라도 불러낼 수 있는 집필의 의도를 택할 수는 없었을까싶은 주제넘는 아쉬움 또한 책장을 덮은 후에 마음을 떠나지 않는 여운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돌아가는 현실을 호소하고 그 부조리에 대한 작은 공감대라도 얻어낼 생각이었다면 우리에게 있었던 정의의 승리와 그 벅참의 집단 경험을 다시 한 번 돌이켜 오늘의 '희망'을 되새겨 볼 생각이었다면, 소수의 마음을 요동치게 할 영웅적인 투쟁에 대한 후일담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시의성있는 반성과 대안이 조금 더 유효한 방법론이 아닐까 싶다.
떠나온 사람의 현실적인 아쉬움이라고나 할까..
1999-09-22 16:28,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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