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관한 개인적인 관심으로 집어든 책이다. 꽤 두툼한 양장본을 받아들고 목차를 먼저 보면서, 잔뜩 기대를 품고 책장을 넘겼다. 바르샤바와 부다페스트, 프라하.. 주마간산으로나마 내가 지나쳤던 그 거리의 기억들이 생생히 살아오는 것을 느끼며, 타인의 시선으로 내 마음 속의 그 곳을 읽어내는 독서는 꽤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자는 책날개에서 소개된 것처럼 남다른 여행을 즐기고 직업적으로도 문학과 예술에 꽤 조예가 깊은 전문인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특별하고 매력적인 각개의 소재에 대한 접근이나 서술이 상식적이고 평면적인 지식 전달에 국한되어 있고 여정과 감상 역시 단편적이고 안이한 느낌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정보는 일반 여행 책자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어서 직접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움이나 그 여행만의 독특한 현장성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고, 전문인의 안목나 시선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동유럽 문화 예술 산책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비교적 다양한 지역을 고루 안배해 지역적 균형을 맞추고, 일반인들에게 아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동유럽 각국과 러시아 지역에 대해 테마를 가지고 접근한 기획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기존의 알려져 있는 정보를 나열하고 해설하는 데 그치는 저자의 필력은 적잖이 아쉬운 부분이다. 동구 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권의 책으로 동유럽의 대표격인 문화 유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지만, 이 책이 시발이 되어 좀 더 심층적이고 성의를 담은 동유럽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과 기대가 있다.
2003-02-08 12:50,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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