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전부터 맘 속에 꼽아놓고 독서 후의 동질감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2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은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내 방구석을 심히 좋아하는 나는, 온전히 자의의 바쁨이 아닌 동안에 무척 자주 내 방 여행을 꿈꾸는 편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늘 측면 표지로만 익숙해버린 많은 책들과 씨디들, 온갖 영화 브로셔와 상자들과의 씨름 생각으로 마음은 부풀어 갖은 계획을 하지만 실상 바라던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는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몰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게 내 모습이다. 그렇다면 크게 공감없음이란 독후감은, 단지 200년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차이일까.
저자는 42일간의 시한부 가택연금을, 돈 들 것 없는 내 방 여행으로 바꿔놓았다. 역사에 밝지 못해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황은 잘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하인과 개 한 마리와의 동거가 가능하고 의식주의 문제 해결에 아무런 애로가 없는 그는 매우 여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만끽한 듯 보인다. 정해져 있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견디어내면 당위적으로 자유의 시간이 온다는 확신은 '갇혀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절실하게 만들지 않는다. 남다른 자의식과 자기애를 가진 사람의 경우라면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타인과의 관계로 얽히고 설킨 현실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계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니 방구석에서 7주를 버티거라~ 하는 벌이라면 나라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 내심 부러웠다. 옮긴 이의 해설에 의하면,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저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꽤 많은 문학대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창적이면서도 거침이 없는 문체'라는 찬사에는 무표정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으나, 그것이 근대 이전의 규범적이고 틀에 박힌 양식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에 국한된 것이라면 공감에 대한 열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게 별 의미가 없다.
능청스러운 유머를 행간에 날리며 심히 분방하게 저자는, 자신의 방과 자신의 맘과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책 속의 문장은 분명 설명적이고 지시적이다. 접근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갖가지 매체로부터 홍수를 이루며 쏟아져나오는 무한량의 정보 속에서 취사선택의 갈등 및 가치 판단을 끝도 없이 해야만 하는 지금과의 비교는 당치도 않겠지만. 분명 정보를 독점하는 계급이었을 그가 풀어내는 사색의 기록은 그 당당함과 선구자연하는 문체에 비해 별로 새롭지 않았다. 시의성 혹은 개인적 심의성의 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오래된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르나... 끝도 없이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혼과 동물성이라는 존재의 이분법에 대한 저자의 천착은, 혹시 그 시대에는 매우 독특하고 놀라운 것이었을까? 미안하지만 오래된 책에서 느껴지는 고답적인 멋과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절에서 연유하는 미지에의 향수와 사색의 밀도에서 나오는 어떤 진정성 같은 것을 바라는 내게는 너무 헐렁하거나 도저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나는 한낱 방구석 여행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2005-12-22 22:25,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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