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에 관한 <통한>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주노동자 운동, 특히 중국동포의 집에서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김해성 목사님의 글과 그 곳을 드나들며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작가의 사진을 엮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88년 올림픽 이후라고 하니 어언 20년을 바라본다. 어려서부터 단일민족의 판타지를 교육으로 주입받아온 우리에게 다른 피부의 사람들, 특히나 우리보다 높은 채도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시선과 무관심에도 그들은 이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농촌의 신부들과 일명 '꼬시안'이라 불리우는 혼혈 2세 아이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몇 년 전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공론화한 '아시아 아시아'라는 코너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느낌표>에서는 이제 이주여성과 아이의 고국 방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는 것만 생각한다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다치고 때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야했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이제 많이 개선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이 쓰여진 것도 벌써 몇 년 전이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펼친 책장에는 조용한 흑백사진에 박제된 듯 박혀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아주 조용한 통한의 기록, 일주일이면 한 두 차례의 장례식이 어김없이 치러지고 쉼터 지하의 창고에는 납골당에서마저 거부당하고 혼령만을 떠나보낸 이주노동자들의 유골 수십 기가 쌓여 있다고 했다. 고용허가제도 시행되고 있고 국민의식도 많이 개선되었으니 이제는 아닐꺼야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언론의 보도와 우리의 관심이 사라졌을 뿐 여전히 타국에서 질곡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지속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마저 미안할 만큼, 고통 받으며 죽어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해성 목사님이 계신 성남은 특별히 중국동포의 집이라는 이름을 함께 걸어놓고 있는데, 그래서 이 책에서도 중국동포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이 땅을 떠난 사람들, 일제의 침략과 수탈 속에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나 강제징용, 학병, 정신대를 피해서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사람들의 2세들은 지금 법적으로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고 한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중국동포의 고국 방문이 진행되고, 여행이나 친지와의 만남 등을 이유로 들어온 그들이 미등록노동자로 일하게 되면서 이 땅에서 함께 한 것이 벌써 십 오년이 더 지났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같이 잘 사는 나라가 아닌 탓에 그들은 아직도 '동포'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나라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겠다는 부푼 꿈을 품고 한국행을 결행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되돌아간 것은 '나랑 너희는 달라'라는 우월감 속의 인권 탄압과 산업재해와 무거운 빚과... 그런 것들이라고 한다.
자본과 노동이 함께 이동하는 세상에서,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건 이주노동자건을 막론하고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노동력을 수입했더니 사람이 들어왔다'라는 말은, 우리의 해외 인력 도입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무성의하며 부주의하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부분이다. 물론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우리의 문제들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단시간에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제 인력의 송출국에서 유입국이 되었다고 해서, 그야말로 '당한 놈이 더 한다'는 속설을 꼭 우리 사회가 실천하고 확인해야만 하는 걸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몇 달 전, 김해성 목사님의 아이들과 친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서 크레파스와 물감의 살색이 살구색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찾아 그렸던 바로 그 살색, 우리 사회의 편견이 무의식중 얼마나 많은 것들에 차별의 경계선을 담담히 그어왔는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이주노동자들과 관련한 문제는 이제 그들에 대해 어떻게 하자, 라는 입장이 아니라 우리 안의 나와 네가 조화로울 수 있는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고민할 때인 것 같다. 핍박 받고 아파하고 죽어나가야만 동정의 시선으로 잠시 돌아보고 마음 아파하는 반복 속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묻히고 있다.
2005-11-18 02:47,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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