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있다. 관심과 취향과 코드는 너무나 일치하나, 어딘가 나와 맞지 않는 경우. 게다가 나 역시 매우 소중히 여기는 대상에의 열정(?)과 정보를 나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판단될 경우라면 살짝 난감해지면서도 어쩐지 외면할 수는 없는 불편한 느낌 같은 것. 그 속내는 설령 아무 의미없이 저자거리를 떠돌며 회자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만은 속에 꼭 감춰두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며, 어리석은 욕심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공유하고픈 대상을 만나기 전까지는 감히 '나도 그래' 라는 동류의식을 표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동호를 통해 나누며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것과는 미묘한 차이로... 이를테면, 내밀한 자의식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만 같은 아주 개인적인 어떤 대상 말이다.
무슨 대단한 나만의 보석이라도 되는 양 장황하게 써놓고 보니 좀 우습지만... '프라하'와 '길'은 내게 그런 대상이다. 이미 너무나 세속화(?)되어 굳이 개인적인 의미 부여를 한다는 게 머쓱하면서도, 여전히 밀실에서 혼자 품고 싶은 대상들. 물론 나 이전의 무수한 누군가들 역시 자기만의 프라하와 자기만의 길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을 테고, 함부로(?) 떠들지 않겠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과 나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놓치지 않겠다는 내딴에는 작은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큰 기대 없이 제목에 '언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펼쳐봤었던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며, 이 책에도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대로 수수한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고, 디자인엔 영 문외한인 터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 아닌 듯도 한 저자의 이름도 그냥저냥 별무감하여 편견 없는 기대를 가지기에 무난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의 여유로운 새벽에 읽을꺼리로 적당하다 싶어 펼쳐보니... 본문 지면에까지 신경을 쓴 빛 바랜 책장연하는 디자인이 사소하지만 사려 깊은 배려 같이도 느껴졌고, 사진이 꽤 많이 쓰였음에도 재생지 느낌에 두께에 비해 가벼운 무게도 괜찮다 싶었다.
하지만 음... 이것은 글을 담은 책.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불만스러움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저자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꽤 알려진 프로페셔널인 듯 한데, 좀 무례한 이야기지만 꼭 이런 류의 글까지 써서 책을 내야 했을까. '그냥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세요'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맴돈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짝사랑하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여행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아닌 이상, 혹은 '프라하'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언급이라도 모두 환영이라는 광활한 심사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이 책은... 반 이상이 아쉬움이다.
물론 무릇 책이라 함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는 규정은 없으니 내용이야 쓰는 사람 마음일 테고, 유수한 출판사에서 나름 상품성을 인정하고 기획 출판 되었을 터이지만... 이렇게나 글 빼고 나머지가 대체로 훌륭한 책이, 굳이 글이 중심인 책으로 나와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실은 그래서 책 읽고 바로 자려다가 벌떡 일어나 서평 올린다고 컴퓨터를 켜버렸다.) 주말마다 공중파를 타고 마지막에는 덕수궁 돌담길 풀팅까지 마다 않았던 '프라하의 연인'도 있었던 마당에, 내 마음 속의 프라하니 뭐니를 말하는 것도 심히 민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은 좀 달라야한다는 고루한 믿음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읽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바람을 가져도 되는 지는 모르겠다만 그리고 이미 여행기도 과잉인지 한참이지만, 정말 좀 눈 밝고 글 잘 쓰는 '작가'의 너르고 비범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으로 나와야 할 이유가 있는' 여행기를 만나고 싶다.
2005-12-21 03:38,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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