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획사 모던타임즈 명의의 머리말에는 '유쾌한 농담들의 야유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라고 떡 하니 써있다. 필자에 윤대녕의 이름이 있길래 얄팍한 전작주의의 꿈으로 사들이기는 했지만, 뭔 초대씩이나. 게다가 나는 '어머니의 수저'를 읽고 다소 맥이 빠져(물론 반 이상은 매우 개인적이고 왜곡된 성향 탓이다.), 이건 또 뭔가 보자 하는 심정으로 바로 집어들었다. '새참'이란 제목이 붙었지만, 음식 이야기는 아니고 '유명 소설가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수다, 즐거운 인생' 이라는 낯 간지러운 멘트를 표지에 박은, 이른바 '심심할 때 먹는 책' 이란다. 타이밍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나는 마음이 불퉁할 때 읽어버렸으므로 전혀 유쾌하거나 즐겁지 않았다.
한참 전 이야기지만 '깊이에의 강요'를 화두 비슷하게 마음에 담고 지낼 때가 있었다. 한없이 가볍고 얄팍한 인간인 주제에, 어디서 굴러들어온 강박인지 가식이라 비난해도 할 말 없는 요상한 엄숙주의 같은 게 내 속에 있는 것이다. 특히나 책과 글에 대해서는 더욱 완고하게 가동되는데, 이는 '깊이에의 강요'를 타산지석하더라도 가끔 이건... 하는 난감함과 마주칠 때 오히려 완강하게 발동한다. 어차피 세상에 널린 게 책이고, 그렇다면 알아서 알량한 심미안(?)을 발휘해 선택하면 될 일이니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일은 아닌지도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떡하니 박혀있는 책이라면, 탐식증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로서는 꽤 난감하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내 좋은 읽기만 제공하면 좋겠는데, 대체 어쩌자고 이런 책에까지 이름을 올리는 걸까 싶은 이기적 불만이 솟구쳐버리는 것이다.
열여섯 작가의 짧은 '새참'이 뭉뚱그려진 보따리는 하나하나 풀수록 못마땅함의 시너지를 더하며 점입가경이었다. 이건 꽁트집이야,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찾아봤다. 꽁트란 1.인생의 한 단면을 짧고 재치 있게 표현한 단편 소설. 장편 소설(掌篇小說) 2. 유머·풍자·기지가 넘치는 촌극을 흔히 이르는 말.이라고 네이버 대신 엠파스에서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그렇다면 뭐, 나의 속절없는 기대를 배반했을 뿐, 이 책은 그럭저럭 꽁트집이다. 제목도 심심할 때 읽는 '새참'이라 붙였으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건 별반 하자가 없는 것이 되겠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의 참신성과 밀도 혹은 최소한의 품격(?)이다. 출판기획사에서 원고를 청탁하며 심심할 때 읽는 책이니 그런대로 허접하게 적정선 이하의 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지 않고서야, 어째 이렇게나 헐렁하고 실소를 자아내는 글들이 가득한 걸까. 섬광같이 빤짝하는 인생의 비의까지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은 글들이 주르르륵이다.
좋다는 사람도 가끔 봤지만, 예전 '정육점 여인에게서'를 읽었을 때의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제일 먼저 찾아 읽었겠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글 '연인'이 첫 타자로 올라와 더욱 김을 빠지게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 미모의 여인과 우아하고 간질한 데이트를 즐기며 의심하는 아내에게는 발뺌을 하는 남자, 그러나 아내는 저간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고 미모의 그 여인은 처제였더라는. 유머도 풍자도 기지도 없는 허술한 꽁트. 아, 정말. 윤대녕 아저씨 왜 이러세요! 나머지 열다섯 편의 글도, 대략 위와 같은 유머와 풍자와 기지의 평균치를 유지하고 있다 보면 될 것 같다. 그나마 후반부 몇 편의 글이 실소와 불쾌를 보상하는 역할을 해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말 무책임한 기획과 무성의한 집필의 결정판이 아닐까 싶다.
2006-12-18 15:2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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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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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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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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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북스토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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