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bon voyage ... 좋은 여행이 되라고 말해줘, 라는 뜻이란다. 모조리 유명인사(?)인 그의 가족 홈페이지 도메인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만화를 처음 접한 건 소설가 김영하와 함께 작업한 '영화이야기' 였다. 만화에는 영 문외한인 관계로, 나는 책에 곁들여진(?) 그의 만화들에 큰 인상을 받지는 않았다. 못했다,가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만화맹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만화에는 친화력이 없는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순전히 김영하의 지인이며 1년 간의 신혼여행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옥수수빵파랑'을 읽으며, 나는 뒤늦게 그와 가족들이 가진 뭉근한 매력과 자유로운 행보에 선망어린 친근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백 권 가까이 되는 책에 이름을 올리며 엄청나게 만화와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는 그에게는 좀 실례되는 관심이지만, 암튼 그렇다.
돈이건 다른 무엇이건 발목을 잡는 현실 때문에 그들처럼 훌쩍 떠날 수 없는 내가 처음 책을 집어들 때의 마음은 사실 좀 심퉁맞았다. 진짜 팔자도 좋아, 1년이나 신혼여행 하고 와서 이번엔 멕시코에 쿠바라니. 귀 얇다는 이우일이 범죄영화를 무색케하는 남미의 치안상태를 전해듣고 여행을 갈등하는 초반부까지도 나는 부러움과 질투에 몸서리를 치며 책장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족은 참 복도 많은 것이, 물론 지면으로만 접하는 것이지만 앤간해선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형을 빼닮은 귀여운 딸 은서도, 곧 학부형이 될 거라고 믿을 수 없을만치 젊고 아리따운 아내도, 심하다 싶을 만치의 소비벽(주로 피규어나 싸구려 장난감 따위)을 가진 이우일도, 그저 남다르게 타고난 자신들의 인생에 충실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다수에게 아직은 미지의 땅인 그곳에서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 역시 가르치려 들거나 은근히라도 과시하는 느낌이 없어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이래서 가족이 좋다는 거구나~ 하는 애초에 포기한 가족로망까지 은근히 불러일으킨다.
일별할 수도 없이 많은 여행기가 쏟아져나오고, 때로는 미지에의 선답자라는 과도한 책임감으로 과열된 정보 전달에 열을 올리거나 내면의 희열을 오롯이 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저버리지 못해 불감당의 공감을 뒤집어씌우고자 하는 저자를 만나게도 된다. 궁금은 했지만 이건 아니었어, 류의 씁쓸한 감상 혹은 뭐 어쩌라고? 하는 불쾌감(다분히 질투어린)으로 책장을 덮게 만드는 여행기들에 비하면, 이우일 가족의 여행 기록은 참 착하고 다분다분하다. 어찌 보면 별 것 없기도 하지만, 애어른 할 것 없이 천진난만스럽고 좌충우돌하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그들 가족의 이야기를 엿보는 즐거움이 글 읽는 재미를 배가해주는 것 같다. 그들의 글과 그림에는 오히려 별건 아닌데... 라며 말끝을 흐리는 이야기를 채근해서 더 듣고 싶게 만드는 묘한 재주와 매력이 있다. 솔직히 읽은 지 보름 넘게 지나고 보니, 선명히 떠오르는 건 티나 모도티와 워리 달 뿐이지만 그래도 아련하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더운 기를 가득 머금은 쿠바의 땅을 잠시나마 기웃거린 느낌이다.
유유자적, 좋은 건 다 곁에 두고 즐기며 즐기며 살아가는 인생들 같아 여전히 부러움을 금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허물어져가는 건물들에 모자란 전기로 밤이면 온통 깜깜해지는 가난한 나라를 궁금해하는 어린 딸에게, 공산주의는 다 같이 잘 사는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그들의 선량함이 어쩐지 짠하고 고맙다. 아직은 꿈으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는 여행, 조만간 나도! 하는 미션임파서블에 불타게 만들지 않는 그들의 여행기에 침착한 호감을 담아 침대맡에 둔다. 답답할 때마다 뒤적이다보면, 실은 보이지 않는 치열함(?)의 산물일 그들의 그림과 만화에도 언젠가 내 눈이 열리지 않을까. 진지한 의도로 진행된 이벤트에 직관적 찍기로 일관했음에도 뻔뻔하게 선물로 받아 즐겁게 읽었다. 마립간님께도 감사.
2006-08-19 12:55,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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