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창완 아저씨가 좋다. 가끔 길거리 로또광고나 인터넷 무슨무슨 론 광고에서 마주치는 것 이외에는 어디건 대체로 반갑다. 초등학교때였나,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베스트극장'에 삽입된 '안녕'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어른같지 않은 여리고 얇은 목소리의 첫느낌은 라디오를 끼고 살며 조금씩 접하게된 그의 새노래(실은 이전의 명곡들)들을 통해 차츰 깨어지기 시작했고, 우울하고 낮게 읊조리는 혹은 터질듯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포효하는 그의 노래들은, 한 사람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지만 '김창완'으로 자연스럽게 수렴된다.
본격적으로 김창완에 열광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였다. 김기덕이 진행하던 '2시의 데이트'에는 뮤직드라만가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 뮤지션의 살아온 이야기를 그의 노래들과 함께 라디오드라마로 엮는 형식이었다. 당시 '독백'과 '청춘'과 '회상'을 특히 좋아했던 나는, 불같은 연애 후에 이른 결혼으로 어린 아빠가 된 그가 아들의 백일인가 돌잔치날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지었다는 '청춘'의 비하인드스토리가 너무나 멋지게만 느껴졌고, 다섯살 어린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구분 못 해 아무때나 모래밭에 나와 노는 자신을 선생님이 안아서 교실로 데려가고는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서 귀엽다며 흐뭇해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의 공개방송에서 나이를 먹을 수록 자기 나이가 좋아진다고 했던 그의 말을 나는 이르게 알아버린 인생의 비밀인 양, 한동안 마음 속에 간직했었다. 당시까지 정규음반도 무려 10집이상 나온 터여서 내가 주로 들었던 산울림의 노래들은 네 장으로 나온 '산울림 Greatest Hits'라는 시리즈 음반이었다. 뭔가 열받고 분노조절이 안 될 때에는 나직이 읊조리는 '독백'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고, 괜시리 마음이 슬퍼져서 위로받고 싶을 때에는 '지나버린 날들'이나 '날 사랑하신 님이여'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중3때 DJ였던 그가 진행했던 방송, CBS AM의 "꿈과 음악 사이에"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우연히 주파수를 맞추다가 듣게 된 낯익은 목소리, 김창완 아저씨의 라디오방송이었다.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기뻐하며 그 날 이후 매일 밤 귀 기울여 들었던 그 방송은, 이른바 고정팬들의 엽서들로 거의 커뮤니티와 같은 분위기였고 당시 그 중심에는 백혈병을 앓고 있던 '민초희'라는 언니가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인가가 많았던 그 언니는 글도 잘 쓰고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그림도 잘 그리고, 사연을 통해 짐작하건대 마음도 정말 고운... 안타깝게 아픈 언니였다. 육개월 가량 나는 방송을 통해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처럼 방송을 들으며 언니를 걱정하고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고, 어느 날은 방사선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 모자를 쓰고 있는 게 너무 슬프다며 삼단같이 긴 머리의 인어공주 그림과 자신의 나비핀을 보내주었다는 말과 함께 연달아 내보낸 두 곡의 노래 뒤에 묻힌 아저씨의 흐느낌을 들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아마 자기는 세상에 없을 거라는 사연, 아저씨는 '초희'이라는 노래를 손수 만들어 그 방송에서만 가끔 들려주셨고(나중에 임백천이 음반을 낼 때 '슬픈 꽃잎'이라는 제목으로 불렀었다, 왜 임백천이었을까..;; 나는 정말 아쉬웠었다.), 얼마가 지나 어디선가 정말로 그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 얼마가 지나 다른 심야 방송에 나온 아저씨의 소지품 뒤지기(어느 심야방송이었는데, 그런 코너가 있었다..--;)에서 발견된 나비핀의 정체를 의심스러워하며 농을 하는 DJ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엉엉 울기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이 나왔고, 또 시간이 더 지나서는 문성근이 아저씨 역할을 한 동명의 영화가 나왔다. 그냥 이렇게만 쓰는 것이 야박(이거 요즘 누구때문에 함부로 쓸 말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하게 느껴질 만큼, 내게 그 시절은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참 풍부한 시간들이었고 그 한 축은 분명 김창완 아저씨가 맡아주고 계셨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나는 그 사람과 그의 노래를 꾸준히 좋아한 관계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암튼, '그런' 김창완 아저씨의 새 책이다. 수백곡은 족히 넘을 그의 노래들이 놀랍도록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글 또한 벅찬 사랑의 환희와 헛헛한 인생 무상, 예쁜 동화와 극단의 우울을 오가는 것 같다. 이번 책에는 주로 흑백 혹은 모노톤의 아련한 느낌들, 추억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상들이 담겨있다. 언젠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꽃은 왜 아름다운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던 그의 대답이 생각난다. 너무너무 소박하고 친절한 동네아저씨같지만 그는 지독하게도 외롭고 고독한 천재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아주 특별한 인생을 가장 평균적인 평범의 이미지로 살아가는 사람.
비교적 무난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책에서 그는 꿈과 유년시절과 가족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야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눈에 혹은 마음에 보인 것은 무엇일까... 에필로그에는 그의 친구 '위대한 그림자'와의 대화가 한 토막 나온다. 내가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고 그러자 친구는 나지막히 말했다. "그것만은 말하지 마라." 너무나 진지하고 무겁게 말을 꺼내서 나는 대꾸도 못하고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계속 중얼거렸다. '난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어. 그렇게 생겨먹은 게 나라구. 이 바보야' 그 친구는 인내심이 대단했다. 나의 게으름, 나의 주벽, 나의 허황된 꿈, 나의 편견을 다 견뎌냈다. 그는 이 친구가 있어 그렇게도 여러가지 모습을 한 몸에 담고 살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노래했던 '무지개'처럼, 다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고 모두 떠나고 외로워질 때는 길동무가 되어 같이 걸어주는. 그리고 실은 나도, 그를 친구 삼아 무지개 삼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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