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3. 1. 27. 17:12



19세기 런던의 연구자이자 탐험가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 어느 날 부두를 산책하다가 늙은 선원에게서 이상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아주 커다란 이를 사들인다. 서재에 틀어박혀 몇 달 간 연구한 끝에 이 뿌리 안쪽에 새겨진 미세한 지도를 발견하고 옛 책에서 보았던 ‘거인족의 나라’를 확신한 그는 1849년 9월 29일, 동인도회사 무역선에 올라 인도를 거쳐 미얀마의 마르타방이라는 지역에 도착한다.

 

티벳에서 시작해 미얀마를 거쳐 인도양으로 향하는 살윈강과 흑해를 거슬러 올라가며 거인국에 닿을 생각이었던 그는 스무 명가량의 장정들과 두 척의 보트를 마련해 항해를 시작하고 두 달 만에 흑해에 도착하지만 상류로 갈수록 탐험은 고행이 된다. 거친 물살과 험한 절벽, 울창하고 위험한 삼림을 통과하며 선원 중 두 명이 실종되고 지쳐버린 사람들을 되돌려보내고 후한 보수에 남기로 한 용감한 원정대원들과 탐험을 계속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절단 내는 와족의 침입에 모두 죽고 혼자만 남게 된다. 

 

식물과 동물 표본을 채집하고 수첩에 그리고 기록하고 외롭고 힘든 탐험을 견뎠던 그는 혼자 남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피로와 허기와 추위에 지친 채 나아가다가 절벽 사이로 비추는 빛줄기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정신을 잃은 듯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난 그가 발견한 것은 계곡 곳곳에 큰 바위처럼 흩어져 있는 거대한 뼈들, 사투 끝에 도달한 거인의 나라를 확신하며 눈앞의 뼈들을 그리고 기록하고 일대를 탐험하며 꼬박 한 달을 보내면서 기력이 다해 쓰러진 그에게 거대한 돌기둥 같은 거인이 다가온다.

 

온몸에 미로 같은 금박 문신이 새겨진 남자 다섯, 여자 넷의 거인들은 감미롭게 노래하며 자신들이 만난 세계를 감응케한다. 주인공이 거쳐온 난관과 투쟁이 무색하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낯선 존재들의 출현. 하지만 인간은 그만큼 지혜롭지 못하다. 비밀스럽게 간직하면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는 다른 우주를 절멸로 내모는 것은 인간의 오만, 그들은 나지막하게 말할 뿐이다. “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책 말미 최재천 선생의 글 중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와 함께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두 문장이었다. 

 

 

프랑수아 플라스•윤정임 옮김
2002.2.20.1판1쇄 2010.3.10.1판27쇄,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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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