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7. 20:56


만화에 문외한인 내게는 박재동, 이우일을 제외하고 모두 낯선 이름들이었다. 책장에서 한참을 묵히다가 뭐 써먹을 자료가 없을까 불순한 생각으로 집어들었는데, 이야기 하나하나의 느낌을 되새길 새도 없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만화판 소수자 종합선물세트구나. 그런데 이렇게 술술 읽히는 게, 나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닐까. 모두 아프고 따끔하고 때로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별 어려움없이 짧은 시간에 읽힌다는 게 아무래도 스스로 미심쩍다,는 껄끄러운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물론 차별적 지위에 놓인 소수자들이 미디어와 정책에서는 호명대상 일순위인 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과잉이다 싶을만치 자주 호출되고 미화되고 때로는 영웅이 때로는 속죄양이 되기도 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라고 말은 하지만 내 일상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에서 생동하는 그들의 이야기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듣고 보아와서 사실 별로 낯설지도 않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라는 '이름'들은 이미 너무 정다운 이웃이지 않을까. 나를 포함, 거의 세뇌 수준인 이 엄청난 간접 학습효과를 어쩔 것인가, 주제 넘는 걱정이 밀려온다.
 

십시일반 손길을 보탠 첫번째 만화가는 박재동 화백. 한겨레 그림판 이후 오랜만에 보는 그림들에서는 역시 한 컷 속에 담긴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채색된 그림을 보니 예전 한 동안 회자되었던 '오돌또기'는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졌다. 인사동에서 전시회도 하고 이런저런 작은 잡지에 자주 언급되었던 '오돌또기'도 참 갑갑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선택받은 해방'의 안심같은 한숨이 맥빠진다.
 

이우일의 만화는 그의 전작들과 다르지 않게 가볍고 쿨한 느낌, 인권이라 하면 진지한 표정을 하고 뭔가 골똘히 고민해야만 할 듯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그야말로 일상의 대화 한 마디에서도 끄집어낼 수 있는 인권의 보편성 같은 걸 민감하게 잘 뽑아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골몰하며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우일을 '쥐어짜서' 청소년 대상 인권 만화책 한 권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세상 대충 다 시시하고 교육 비슷하다 싶으면 철저히 냉소적이 되어버리는 중고생들에게 먹히지 않을까 하는 깜찍한 생각을 해봤다. 작가에 대한 인권침해일까.
 

조남준의 누렁이 시리즈는, 두 개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는데 두번째 이야기의 반전은 아주 그럴 듯 했다. 이제 사내아이처럼 행동 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아주 즐거웠다. 그동안 엄마와 내가 구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가 사내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인 줄 알았다. 엄마는 길들여지지 않았다. 104쪽 농촌 배경만이 아니라도 어쩐지 조금 옛 이야기같은 느낌, 하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같은 시대를 그러나 철저히 다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양극화니 뭐니 해서 이제 만날 가능성이 별로 없어져버렸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최옥란 열사의 삶을 소재로 한 유승하의 '새봄나비'는 딱 '아름다운 세상' 분위기다. 감동을 위한 픽션이었다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정말 그렇게 살다가 다른 세상으로 이미 건너가버렸다는 것에서 우리가 쉽게 자유로와져서는 안될텐데... 순종적이되 강인한 모성과 생활력을 가진 장애인 여성이 투사로 열사로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녀의 투쟁에 반응하는 동사무소 직원의 통화 내용으로도 설명이 된다. "통장 조사합니다. 재산이 일정수준 이상이면 혜택받기 힘들어져요. 저, 말이죠. 다른 장애인들처럼 그냥 조용히 사세요. 벌써 위에서 전화오고 난립니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서로 피곤해져요" . 167쪽 여전히 곳곳에서 결사투쟁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소식이 함께 떠오른다. 목숨을 담보로도 개선할 수 없는 삶의 질곡은 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걸까. 온전히 당사자와 가족들의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장애의 실존적 차원에, 미안하고 무기력하다.   
 

장경섭의 '커밍아웃 블루스'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동성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청년의 독백으로 구성되어있다. 동성애는 사실, 모르겠다. 그들을 인정한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사이에 놓인 자명한 거리를 생각하면, 차마 아는(?) 척 할 수가 없다. 내가 공감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부분은 그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의 일부분일 뿐. 개인적으로 깊은 친분을 나누는 동성애자가 있어, "동성애는 이성애랑 똑같은 느낌이야?" 라고 묻는다해도 "그럼 이성애는 동성애랑 똑같은 느낌이야?" 라는 반문이 돌아오지 않을까. 물론 다름을 넘어서는 방법은 여러가지, 반드시 전일적 이해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런 느낌이다. 어쩌면 얼마 전 퀴어축제 기사처럼 제발 우리를 좀 내버려두기만 하라고, 그들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모포비아 가득한 세상에서, 그들에 대해 너무 친절하려는 것도 또다른 공포 혹은 가식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해보기도 한다...;; 장경섭, 그의 작품집이 한동안 알라딘에서 회자되는 걸 보며 책장으로 모셔오기는 했는데, 아직도 비닐옷을 입고 계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찬사에 기대를 보태준 짧은 작품. 궁금하다.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에서도 등장했던 몽골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최호철의 '코리아판타지'는, 작가의 진정성이 가장 잘 묻어나는 작품이 아닐까 읽으면서 생각했다. 실종된 삼촌의 행방을 좇아 입국한 몽골 이주노동자 사라의 편지를 따라가는 내용이다. 엄마에게 보내는 각색된 편지의 내용과 실제 그녀가 겪는 상황이 나란히 보여지는데, 낯설지 않은 형식임에도 그 적나라함이 상당하다. 그들이 겪는 소통의 난관을 조금이라도 전해보려는 듯, 발음 그대로 표기한 영어 대사는 "난 오기 전에 유격훈련도 받았어. 뺨도 맞고... 그래야 한국에서 견딜 수 있다고." . 186쪽 하는 대사보다 오히려 절실하게 와닿는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이 감당해야하는 폭력적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저 공감의 편리에 그치지 않게 하려는 욕심이 아니었을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에 사라는 삼촌이 두고 온 물건을 대신 찾아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 왈 "그리고 2년만 기다리라고. 내가 삼촌 몫까지 벌어서 간다고 말이야." . 209쪽 그들의 약속은 참 아득하고 멀다. 난 2년 후의 약속을 해본 적이 없는데.
 

기억해두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느라 너무 길어졌는데... 물론 대부분 알고 느끼고 있는 얘기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이상 그들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는 유효하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쩌라고? 근데 답이 없는 것 같다. 계속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말과 글이 내 속에 이미 넘친다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당장 그들을 만나러 나가는 것. 학습효과의 편리함을 떨쳐내고 허위적인 자기 기만 속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들과 어울리고 부대끼고 울고 웃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노숙인 빈자와 같은 특성 범주별 구분에 의한 차별보다 인간 대 인간 개개인의 차이를 어떻게 차별로 내팽개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그녀와 친해지고 나면, 처음 그들을 규정하던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는 사라지고 '어떤 그/그녀'가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2006-06-16 16:58,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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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