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3. 5. 14. 14:21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시차를 두고 두 번째 추천했기에 못 이기는 척 투표한 결과 이번 달 모임 책이 되었다. ‘일베’는 많은 신조어들이 그렇듯 생겨난 맥락이나 대중화된 흐름을 잘 알지 못한 채 익숙해져버린 말인데, 그중 단연 문제적인 단어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별로 궁금하거나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일 것이지만, 갖은 부정적 함의를 흡수한 채 어떤 대명사처럼 쓰인 지 한참 지난 단어를 제목으로 내건 책이 출간된 건 비교적 최근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문제적이라는 강력한 인식에 비해 따로 고민해본 적도 아는 바도 없는 대상이어선지, 일베의 자장이나 파급력에 대해 저자가 전반적으로 과대평가한다는 느낌이 읽으며 지속되었다. 여성과 진보에 대한 혐오, 능력주의와 ‘공정’을 표방하는 ‘젊은’ 우익적 주장을 “일베의 현재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었고, 일베 이후 유튜브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유사한 주장으로 더욱 영향력이 커진 집단이 등장했는데도, 이를 굳이 일베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논리 전개를 위한 환원주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달래며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소시적 피씨통신 유저로서, 그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초반부는 의외로 흡인력 있게 읽혔다. 꽤 오래 나우누리며 천리안을 사용했지만 동호회 활동이 중심이었던 터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 ‘웃음’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저자는 웃음을 ‘사이버 공간의 자본’으로 단정하고, 한국적 웃음 모델을 우월적 웃음(인종 차별, 소수자 비하 등 권력 관계 함의, ‘프로불편러’)과 대비적 웃음(권력 비판, 사회 풍자 등)으로 구분하며 일베의 계보를 설명한다. 단정적 전제에 갸우뚱하는 마음이다 보니 저자의 주장보다는 연원을 몰랐던 신조어나 온라인 현상의 맥락 등을 새롭게 알게 되는 측면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의구심과 수긍을 오가며 1장(일베의 계보: 사이버공간의 간략한 문화사)을 읽었다.

 

저자의 설명에서 의구심이 일었던 부분들. 범진보계열 정당 지지자를 진보 세력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나이브한 관점이라고 느껴졌는데, 수구/보수 양당 구조 정치 현실에서 시민들 중에는 방어적/비판적 지지 의사를 가진 경우가 많고 사회/생활세계의 보수성은 이러한 정치적 선택과 별도로 보는 것이 더 온당하지 않을까? 다른 계량적/실증적 자료를 사례화하기 어렵겠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거나 기사에 댓글을 달만큼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사용자 전체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 것이며(물론 그러한 표현 자체가 여론의 근거가 되기는 하지만) 댓글의 내용을 당시의 인식으로 일반화하는 게 맞을까?

 

2010년 이후 한국 인터넷 담론장의 문제 관련, 당시는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포털에 비하면 소수일지라도 기존 인터넷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sns로 유저들이 이동하던 시기였는데 그러한 변수가 언급되지 않은 점이 의아했다. 일베 등장의 토양을 온라인 담론장의 조건에서만 찾는 것도 부적절한 느낌이었는데,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의 전반적인 보수화 및 극단화(박근혜 집권 및 탄핵), 경쟁과 양극화의 심화 경향 등 현실 세계의 변화도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디시에서 통용되고 일반화된 신조어들 중에 나도 알 만큼 보편화된 말들, 짤 드립 어그로 등의 급속한 확산은 미디어의 확대재생산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또 ‘웃음’이 평범 내러티브와 만나 비윤리적 혐오로 변질/확장된 일베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사소할 수 있지만 회원가입이 불필요한 익명의 커뮤니티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신상을 가릴 수 있지만 개인의 디지털 페르소나를 표방할 수밖에 없는 sns와 달리 일베에서 유독 극렬한 혐오가 창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상황 변동과 더불어 그렇게 조성된 커뮤니티의 우편향 분위기에 더해 낮은 문턱과 익명성이 큰 작용을 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주목이 거의 없어서 의아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온라인은 이제 실제 세계의 일부라기보다 실제 세계를 다양한 매개물을 통해 반영하는 컨텍스트 혹은 실세계를 포함하는 또 하나의 더 넓은 우주 같은 것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 형식의 공통성에 기반해 거의 무한한 내용을 살피는 느낌이어서, 저자가 언급하는 사건과 현상 들이 내가 살아온 동시대의 것들임에도 생소한 부분이 너무 많았고 이는 광범위한 매트릭스에 산개하는 사건과 현상 중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여부에 따라 포착되거나 무화되는 오늘날 현존의 본질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80쪽에서야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역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장의 부제는 이것이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성적 시각의 한계가 반영된 부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장을 읽으며 저자의 문제의식과 내용 전개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되었지만 본문에 해당하는 2장(혐오의 수치화: 2011~2020 일베 데이터 분석), 3장(일베적 혐오: 내부의 타자들), 4장(일베를 만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5장(여성혐오와 능력주의: 일베만의 문제는 없다)을 읽으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거나 설명이 미비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꽤 있었다. 94쪽에서 능력주의를 체화한 일베 이용자들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태도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일베(적) 혐오표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라는 부분은 중요한 지점으로 생각됐지만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142쪽에서 ‘ㅋ’을 하나만 쓰는 것이 상대방의 의도를 무시하고 나아가 명백한 비아냥이자 도발이라는 설명에서는, 공간과 연령에 따른 차이는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동의가 안 되어서 깜짝 놀랐다. 2장의 분석은 대단히 방대한 것이면서도 구멍 내지 오류에 대한 양해지점도 존재하는 데이터 분석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4장에서는 ‘일베’ 10명을 인터뷰하고 각 절의 제목을 ‘불안과 공포’, ‘응어리진 분노’, ‘수치, 순응, 그리고 평범 내러티브’로 붙였는데, 책 출간을 준비하며 새로 쓴 부분도 많겠지만 인터뷰 자체는 거의 7~9년 전 내용이어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이전의 논문에서 과도하게 많은 걸 가져온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불안한 현대에서 거의 유일한 안정을 보장하는 사랑이라는 언급이 나오고,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남성들의 기대’와 유사한 표현이 몇 번 등장하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인 건지 이해가 잘 안 됐다. ‘평범 내러티브’라는 명명이 적절한 것일까 싶기도 했는데 5장과의 극적 대비 효과는 느껴졌지만, 과거 어느 시기에나 있었던 남성 청년 세대와 일베와의 차이를 내포하지 못한 개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5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장대호라는 인물이 내게는 낯설었지만, 그의 글들을 일베의 말들의 전형이라 규정/논증하고, 그 글이 자신의 거주지 방언일 뿐 자신의 글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297쪽에서 “일베의 말과 생각이 한 사람의 것으로 온전히 체화되었을 때 얼마나 반공동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파멸적인 사례다”라고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를 밝히지만, 극단적인 사건으로 결과화된 한 사람의 특수성과 일베의 상징성을 과하게 합치시킨 느낌도 들었다. 사례가 ‘루저-백치-괴물로서의 일베라는 믿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기가 ‘일베의 전형을 명징하게 직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히는데, 일베라는 넓은 스펙트럼에서 한 사례를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비약적 선택인 것 같고 특히나 그의 존재는 너무나 유별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아니어서 이렇게 삐딱한 태도의 독서가 이어졌고, 논문에 기반한 대중서임에도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종종 있어서 6장(결론: 차가운 열광의 확산과 일베적 정치의 탄생)을 읽으면서도 소소하고 허접한 마음의 반론은 이어졌다. ‘한국 산업화의 원천은 혐오였으며, 혐오자들은 국가가 그 발전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도덕적·정치적 산출물이다.’라는 주장에는 일면 동의가 되었지만 소외된 친절함과 386세대로 대표되는 저항하는 청년상에 대한 수치심이 분노를 격화시키고, 회피 혹은 순응이라는 행위 전략을 이끈 수치심이 타자화 과정에서의 동정심을 제거하여 ‘혐오 사회’의 문을 열어젖힌다는 주장은, 합당한 매개 없이 도약한 결론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기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패자와 승자로 사태를 판별하고 승자에 공감 및 능력주의 신봉과 패자 혐오, 지배자 갈망을 내면화하기 때문에(‘전도된 공감’) 비도덕적이고 패륜적인 ‘차가운 냉소’의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 내게는 차라리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소위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선 ‘고인드립’이나 극도의 비윤리성을 집단적으로 수용하면서 웃음/냉소의 계기로 삼고 그러한 사실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익명성과 집단불감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일베’ 유저들을 평범 내러티브를 내면화한 보통의 동시대인이라는 점에(일베의 보편성?) 주목하다 보니 이런 부분을 기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책의 후반부 363쪽의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등장한 이래 10년이 지나는 동안 어떤 정치인, 논객, 학자도 이준석이 구사하는 일베적 내용과 형식과 비전을 파훼하지 못했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야, 떨어지는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간된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일베가 곧 이준석 지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혐오를 무기로 젊은 주요 정치인으로 부상한 그의 위험성, 그가 주장하는 논리의 저변에 자리한 ‘혐오의 자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한 권의 책으로는 적당할 수 있겠다는 수긍이랄까. 그러나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라는 명확한 부제에 비해, 평범에 닿기 위한 개인적 노력에서 좌절하고 수치심을 자신의 몫이라 여기며 자신의 고통은 물론 타인의 고통도 억압하는 것을 정당히 여기는 일베의 멘탈리티에 대한 설명에서, 공격적인 혐오 확산과 극단화 지점으로의 도약에 대한 설명이 너무 빈약한 느낌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물론 거대하고 부정적인 사회적 현상의 연원을 콕 집어 몇 가지로 정리하고 단언할 수 있는 학자는 없겠지만 말이다.

 

‘혐오’는 사전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함’이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소수자나 자신의 적대파에 대한 표현으로서의 ‘사회적 혐오’는 다른 층위의 의미로 변화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혐오’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인데 ‘혐오의 자유’만 문제인 것일까 싶기도. 나 역시 정치적 수구 세력들을 혐오하지만 그 감정을 일베와 같은 식으로 발화하거나 표현하지는 않는데, 이는 개인적 선택 내지 성향에 기인하는 것일까? 어쩌면 누구도 납득할 만한 답을 줄 수 없는 부적절한 의문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가장 궁금한 지점은 그 부분이었다. 더불어 진보/운동 진영이 일베/수구의 주장에 대해 ‘혐오’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설득력을 얻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부분에도 생각이 닿았다. 맥락과 사실관계, 역사 등을 종합해야만 제대로 납득할 수 있는 사안과 현상을 왜곡하거나 호도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 어떤 사안에 대해 골몰할 이유는 없으되 이슈가 되고 있다면 단순명쾌하게 자기 입장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제도적 현실의 압력을 넘어서는 개인적 실천은 요원하고 정치적 올바름은 고루하고 골치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에? 사회운동의 장을 떠나온 자로서 민망한 질문이지만, 인간의 사회적 반응 행동 관련해서도 때로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는 하다.  

아무려나 책 모임 성원으로서의 의무감을 길어 올리며 겨우 읽어냈다. 미시적이지만 공감 혹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았으나 저자의 명석함과 해당 분야에 대한 박식함과 전문성에 비해 나의 이해와 논리적 반론 구성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논리적으로 언어화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수시로 느꼈다. 그럼에도 제대로 다시 읽으며 숙고하고 싶은 열의는 없고, 책 모임의 겉핥기 습성상 집단의 힘을 빌어 이해를 높이거나 오해를 줄이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사소하지만 강렬하게 남은 인상은 ‘나가며’의 후반부와 ‘감사의 말’에서 일베가 좌절한 평범을 가장 고퀄의 수준으로 이룩한 저자 자신의 현재를 가감없이 드러낸 부분이었다. 갸우뚱하다가 약간 당혹스럽고 웃겼는데, 나로서는 아무래도 저자의 성별에 기인한 것이라는 편견을 거두기 어렵다.


김학준
2022.6.13초판1쇄 2022.7.12초판3쇄펴낸날, 도서출판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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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