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3. 4. 22. 19:51



삼사십대를 소위 사회단체에서 일하며 보냈다. 그만둔 후엔 사회적 관계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비혼 여성 중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피부로 별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주해 혼자 지내며 나만의 일상에 침잠한 탓에 사회에 팽배한 시선과 멀어지기도 했을 것이고. 많이 공감하며 읽으면서도 인터뷰이들의 말을 옮기며 해설하는 저자의 반복적인 방어적 태도가 좀 불편하기는 했다. 에필로그에서 밝히는 한계는 초반부터 느껴졌는데, 한 사람이 19명이나 인터뷰해서 책을 내는 일만도 쉽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핫한 여성 작가들의 추천사를 싣기보다 프롤로그에서 먼저 인터뷰이 선정의 현실적 한계를 언급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솔직히 읽기도 전부터 지금의 나는 이 책의 한 ‘반례’가 아닐까 싶은 저어하는 마음과 궁금한 마음이 교차했다.

 

'던바의 수'의 다섯 친구 중 덕질 대상도 포함되는 데에서는 민망하지만 안도감을 느꼈고, 친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한 부분에서는 그런 거 하기 귀찮다는 마음이 지배적인 시기라 느끼는 저항감이 만만치 않았다. 민폐기피자로서, 흔쾌히 도움 받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입원한 주말, 멀리서 찾아오겠다고 거듭 말하는 지인의 말이 고마웠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읽으며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참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도 필요한 것도 많구나 싶었고, 가부장 중심 가족주의 한국 사회에서 자리잡은 제도와 관습 그리고 변화하는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식의 성장으로 현실과 불화하는 시스템의 문제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사회적 발언권과 문화 자본을 가진 세대가 돌봄에 직면한 시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는데 각종 통계와 사례, 여러 이론 들을 근거로 한 실증적인 서술에 인터뷰이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까지, 방대하고 복잡한 서사를 일반화하지 않고 잘 정리한 책이었다. 다 읽고는 조금 쓸쓸한 마음이 되었는데 그 무엇으로든 살아가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지금의 내 상태를 비추었기 때문인 것도 같고, 자주 언급된 전주의 공동체나 꽤 괜찮다고 느낀 여주의 공동체 역시 생각하면 너무나 바쁘게 무언가를 계속 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냥 무위도식 무임승차로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 이번 달 모임 책이었는데 동시대의 동년배로서 대체로 공감이 되고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조금 피곤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김희경
2023.3.15초판1쇄찍은날 3.22초판1쇄펴낸날, 도서출판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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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