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가 설날이라 1월 마지막 주말 서울에서 책 모임이 잡혔다. 주말과 설 연휴에 영화를 볼 테니 이번 달엔 부산행을 건너뛸까 했지만 [프랑스]가 꼭 보고 싶었고 시간이 된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도 다시 보고 싶었다. [프랑스] 개봉에 맞춰 날짜를 잡았다. 연초에 함께한 지인들 덕분에 가리비 삶기 경험치와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는데, 조개류 좋아하는 부산 지인이 떠올라 연락하니 마침 시간이 맞았다. 2007년 여수에서 일로 만난 지인은 멀리 살면서도 꾸준한 인연이다. 내가 일을 그만둔 후 서울 출장길에 세상 화려한 케이크를 사들고 와 축하해줬고, 통영에서 집 구하느라 한 달 살 때는 차 몰고 와서 1박 2일 알차게 놀고 먹으며 생긴 음식물쓰레기를 싸들고 돌아갔다. 멀지 않은 덕도 있지만, 이사 후 세 번째 방문에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치면 최근 가장 자주 보는 지인이다. 안 맞는 옷이었다고 나는 떠나온 바닥에서 당연한 삶인 듯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이어서, 만나면 잊고 지내던 단정한 마음가짐 같은 걸 환기하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상영 중이기는 했지만 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웠다. 지인이 목요일 저녁 모임을 마치고 서면에서 만나 통영에 함께 오기로 한 덕에, 하루에 세 편씩 꽉 채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수요일 오전 집에서 나와 부산에 갔다. 중고서점에 들러 챙겨간 책을 팔고 1시 20분에 시작하는 [전장의 피아니스트]를 시작으로 [노웨어 스페셜], [그린나이트]를 봤다. [그린나이트]가 특별히 장기상영 중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봉 당시 보려니 시간이 안 맞기도 했고 난해하다는 후기들이 많아 많이 망설였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30분쯤 간격으로 깔끔하게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숙소로, 또 영화를 보기는 그래서 <방구석 1열>을 봤다. [세 자매]와 [단지 세상의 끝]을 함께 다루는 회차를 봤는데, 김선영 배우가 나와서 좋았다. 언젠가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과 프랑소와 오종의 [썸머 85]를 함께 다뤄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잠자리가 바뀌니 새벽까지 뒤척이느라 10시쯤 일어났다. 그래도 시간이 많아 느긋하게 이것저것 먹고 늘어져 있다가 12시 5분에 시작하는 [해탄적일천], 이후 [프랑스], [비올레타]로 올해 첫 번째 영화여행을 마쳤다. 세 편 다 괜찮았지만 큰 여운이 남거나 정말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올해는 [6번 칸]이 꼭 개봉했으면 좋겠다. 영화를 이어 보고 나니 허기가 몰려와 햄버거를 먹고 지인과 만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알라딘중고서점에 갔다. 계륵이 된 럭키백 할인을 사용하기 위해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을 살피며 골랐다. 지인 덕분에 낑낑거리며 들고가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호사다. 그러고도 10,800원의 잔액이 남아 아득하지만, 럭키백의 유혹에 다시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은 굳건해졌다. 모임을 마친 지인을 만나 통영으로, 밤의 드라이브는 즐거웠다. 창원 즈음에서 길을 잘못 들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시간쯤이라 운전한 지인에게 크게 무리는 아닌 듯해서 다행. 적잖은 부산행 중 가장 깔끔한 여정이었다, 지인님 고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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