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매주 화, 수요일과 격주 토요일마다 듣는 강의가 있어 날짜 잡기가 애매했다. 3월 하순 거제에서 영화 몇 편을 보기는 했지만 4월 들어 cgv서면 아트하우스관 상영시간표에 군침만 흘리면서 중순을 지나고 있었다. 3월 10-11일에 다녀왔으니 오래도 되었고 4월엔 생일도 있으니까 선물 겸 2박 3일로, 여러 조건이 맞는 4월 21일부터 23일까지로 숙소 예약을 미리 해뒀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 업데이트된 21일 이후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절망, 보고 싶은 영화들은 거의 다 수요일로 종영이고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는 보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혼자 비상에 걸려서 고심한 결과, 꼭 보고 싶은 영화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다음 날로 일정을 바꿨다.
원래 사전 계획 없이 안 움직이는 편이고 느긋하게 지낸 지 오래라, 1박 2일이지만 갑자기 급하게 준비하는 여행은 낯설다. 17일 삼문당 정밀아 님의 공연 소식에 반색했다가 공연비가 내게는 부담이어서 접었고 18일 오후 온라인 책모임이 다음 주로 연기됐는데, 주말 부산행을 위한 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부산 서면까지는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질 때 3시간, 해서 보통은 오후 두세 시 영화를 시작으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꼭 보고 싶었던 [페러렐 마더스]를 12시 15분에 봐야 했다. 하필 답사 강의 겸 나간 김에 너댓 시간을 걷고 온 터라 많이 피곤했지만, 영화 보고 싶은 마음을 믿고 잠들었더니 잘 못 자고 뒤척거렸음에도 일찍 눈이 떠졌고 심지어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영화를 보러 가는 여유를 만끽했다.
첫 영화 시간을 당기고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들을 욕심내다 보니 일요일은 [페러렐 마더스], [루이스 웨인-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사랑 후의 두 여자], [고스팅 글로리아] 그리고 월요일은 [복지 식당], [태어나길 잘했어], [엄마와 나]까지 일곱 편의 영화를 몰아서 보는 무리 겸 호사를 누렸다. 부러 맞춘 건 아니지만 일요일은 외국 영화, 월요일은 한국 영화였고 생일에 [태어나길 잘했어]를 보게 되면서 별 것 아닌 게 딱 맞아 떨어지는 재미와 의미 부여도 가능했던, 꽉 차다 못해 보람찬 이틀이었다. 놓칠까 아쉬워 일정을 급변경한 게 전혀 후회되지 않는 괜찮은 영화들이 많아서 무척 행복했다.
영화 볼 때 뭘 안 먹기도 하고 팝콘이나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어서 매점 쿠폰은 사실 필요없는데, 지난해 생일콤보 무료쿠폰 버리기 아까워 교환했다가 좀 곤란했었다. 음료 하나는 대기 공간에서 혼자 있는 이에게 살짝 내밀었더니 다행히 고마워하며 받아주셨지만 팝콘은 결국 반 이상 버려야 해서 마음이 안 좋았다. 그렇다고 무료쿠폰을 아예 버리기도 아쉬웠는데, 지난 1월 일요일에 영화 보러 갔을 때 우연히 키오스크 근처에 있다가, 아이를 동반한 엄마가 다가오길래 약간 우발적으로 여쭤보고 쿠폰 바코드를 찍어드렸었다. 이번에도 일요일이니 아이 동반 엄마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다행히 딱 마주쳤고 놀라면서도 반가워하시는 엄마와 적극적인 아이 덕분에 기분 좋게 생일콤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별 것 아니지만 이것도 재미있는 일, 나 콤보쿠폰 또 있는데 다음에 아이 동반 엄마 만나면 또 써먹어야겠다.
며칠 전 엄마가 생일날 잘 챙겨 먹으라고 이것저것 잔뜩 보내줬는데, 미역국은커녕 오전에 김치사발면 하나 먹고 굶으며 영화 보다가 집에 오니 9시가 넘었다. 터미널에 내려 햄버거라도 사먹을까 하다가 관뒀는데, 너무 먹는 요즘이라 속이 좀 빈 느낌이 오히려 가뿐하다. 2박 3일 느긋하게 즐길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아직 나에게 '부랴부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도 반가웠다. 한 달에 한 번 부산영화여행은 역시 약간 치열한;; 느낌이 드는 1박 2일이 적당한 것 같고, 개봉 예정 영화들을 확인하며 5월은 12일과 13일로 미리 택일을 해뒀다. 그리고 영화는 맥시멈 하루 세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허리가 아프고 피곤하지만, 난 내일 오전 강의에 늦지 않고 잘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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