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22. 5. 13. 21:21

 

 

5월의 부산행을 완료하였다. 지난해 주로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1박 2일로 갔었는데, 꼭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가 생기고 수요일 저녁 시간 극장에 사람이 많아 분위기가 별로인 경우도 있어서 앱의 영화 메뉴에서 개봉예정작을 살펴 보고 날짜를 정하는 걸로 바꿨다. 이번에는 [파리, 13구]와 [스프링 블라썸]을 함께 볼 수 있는 날로 미리 정했고, 목요일과 금요일 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왔다. 하루에 네 편은 역시 좀 피곤하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가능한 보고 싶은 걸 다 보려니 어쩔 수 없었고, 금요일에 달랑 한 편은 아쉬웠지만 궁금하지 않은 영화를 패스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흔쾌히 볼 수 있었다면 [소설가의 영화]까지 봤겠지만 아무래도 보고 싶지 않았다.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창기부터 몇 년 전까지 그의 영화를 많이 본 편이고 [하하하]는 통영과의 인연을 매개한 작품이어서 dvd로까지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영화를 보지 않게 된 건 아무래도 세간의 화제가 됐던 '사랑' 때문이었는데, 누가 누구와 사랑을 하든 불륜이든 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관련 뉴스가 포털을 도배했던 언젠가 한 뉴스를 읽은 영향이 컸다. 아내와 딸은 그의 새로운 사랑과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에 그는 출석하지 않았고 뭐 그런 가십 기사였는데, 어디까지 팩트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랑과 이혼 소송'은 사실일 테고 아내와 딸의 고통도 진실일 테다. 누군가의 사랑과 이혼은 제3자인 내게 무관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존재하고 고통 속에 있다면 그에 대해 사죄하고 대외 활동을 자중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싶었는데, 이혼 소송 법정에는 대리인을 내보내고 해외 영화제에는 참가하는 모습이 납득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랑을 선택했다고 두문불출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연인과 동반해 미디어에 노출되는 모습이 원가족들에게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고,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어떤 가담 행위처럼 느껴졌다. 물론 언젠가부터 그의 영화들이 너무 사적인 세계의 동어반복 같아 전만큼 재미있지 않았고, 내가 본 마지막이었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처음 본 한 배우의 발성과 음성이 집중을 방해할 만큼 거슬렸는데 이후 출연 빈도가 높아지기도 했던 터라, 꾸준히 내놓는 그의 신작들을 무시하는 건 자의적 윤리보다는 취향의 이전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튼, 덕분에 금요일에는 체크아웃 이후 3시 영화를 보기까지 서면 일대를 오랜만에 많이 걸어다녔고, 거래 은행 지점들을 돌며 몇 개월만에 통장정리도 시원하게 했다.

 

이번에도 오전에 부산에 도착해 중고서점에 들르고, 오후 1시쯤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다섯 편 모두 나름의 이유로 궁금했던 영화였고, 영화 시작 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영상편지를 세 번쯤 받았고 아마도 놓치게 될 [봉명주공] 예고편을 네 번이나 보았다. 앱의 개봉예정작 리스트에서 확인하고 기뻤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예고편도 세 번 보았는데, 예고편까지 보고 나니 혹시 [6번 칸]을 올해 극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져서 기대해보기로 했다. [파리, 13구]와 [동경 이야기]를 본 후 숙소 체크인을 하고 바로 나와서 [허셀프]를 보았다. 다음 영화까지 텀이 길어서 숙소에서 쉬고 저녁도 먹고 다시 나와 [우연과 상상]을 보았는데, 극장에서 숙소까지 아주 짧은 밤산책이지만 자정 가까운 시각의 도심을 걷는 일이 역시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본 후 여름밤을 걸을 때면 어쩐지 그 영화가 떠오르는데, 나른하고 약간은 몽환적인 정취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아직은 늦은 봄밤이지만, 겨울밤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여서 이르지만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은 아주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고 숙소에서 나와 많이 걸었다. 극장 객석에 앉으니 여독이 밀려오는 느낌이었지만 편안한 좌석과 머리보다 마음으로 보게 되는 영화여서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남쪽의 비 예보로 우산을 챙겨갔지만 쓸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만족하며 터미널로 향했는데, 부산에서 통영까지 또 터미널에서 집까지는 연이어 난감함에 시달려야 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크게 떠들거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언행을 이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나 어르신들이라고, 어렸을 때는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런 걸 결례로 여기지 않는 문화였을 테고 그 버릇이 남아서 그런 걸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공공 예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교육 받은 세대들이 다수를 점하게 될 테니 점점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딱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부산에서 통영으로 오는 버스에서 약 80분간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젊은 두 여성 때문에 엄청 짜증이 났다. 그들이 바로 내 뒷자리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지만, 에어팟을 끼고 볼륨을 최고로 높였는데도 그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피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처음엔 시간이 지나면 대화를 중단하거나 목소리가 낮아지겠지 생각하며 이어폰를 뚫고 들어오는 소음을 참았지만 절반 이상 왔을 때도 변함 없어서 한 번 부러 뒤돌아보았고 그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째려본 건 아니지만 앞자리에서 굳이 뒤를 돌아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지 않나, 보통은 자기들 소리가 컸나 생각하고 자연히 목소리를 낮추게 되지 않나.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고 통영에 도착할 때까지 변함 없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꼭 그래야만 하는 대의명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지, 혹은 그렇다는 의식 자체를 못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교양 없고 무례한 태도를 세대나 교육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걸 아연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자꾸 경험하는 건, 내가 유난히 민감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지만 제발 사람들이 조금 덜 뻔뻔하면 좋겠다.

 

그렇게 시외버스에서 내렸는데 터미널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는 더 희한한 경우를 겪었다. 어려 보이는 남녀가 버스의 맨 뒷자리와 그 바로 앞 자리에 앉았는데 여성이 앉자마자 빈 앞 자리 등받이에 두 다리를 올렸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맞은 편에 앉아 있었으므로 옆 시야로 뭔가 휙 지나가서 보게 됐는데, 얼마 후 다리를 내리더니 통로 쪽으로 돌아앉아 한 다리를 팔걸이에 걸쳐 올리거나 들어 올리고 뒷자리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이와 큰소리로 대화를 했다. 시외버스에서 지쳐서 이어폰 볼륨 올리고 딴 생각하며 무시했는데, 이런 게 이렇게 거슬리는 건 예민해서도 있겠지만 그냥 내가 꼰대가 돼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하고 자유로운 거랑 개념 없고 예의 없는 건 분명 다른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꼰댄가, 혼란스러웠다. 혹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불쾌감을 안기고 다니면서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의심이 순간 엄습하기도 했는데, 기억력이 날로 감퇴 중이기는 하지만 설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거슬리는 거 많은 건 인정하지만, 귀가길 두 번의 버스 탑승이 빡센 덕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이번 부산행은 마무리가 영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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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