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22. 6. 10. 23:26



5월 하순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부산하게 6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거를 수는 없으므로, 지난달 예고편을 보며 기대했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과 나름 기대되는 [브로커] 등을 염두에 두고 날짜를 잡았다. 같은 패턴을 1년 넘게 반복하니 접근성 덕분에 편리하다고만 느꼈던 극장 인근 싸고 지저분한 모텔에서의 하룻밤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있지만, 고양이 두 마리가 활보하는 지인의 집은 너무 멀고 비싼 돈 주고 괜찮은 호텔을 찾자니 백수 주제를 넘는 일 같아 달리 방법이 없다. 하여 이번에도 자주 가던 모텔을 예약했는데, 역시나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을 손꼽았던 이유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흠뻑 빠졌던 [6번 칸]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 작품이기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쏘쏘했다. [애프터 양]은 선호하는 소재나 주제가 아니고 [파친코]를 본 바도 없었지만 시간이 맞기도 했고 cgv명씨네에선가 정성일 평론가의 토크 소식도 들었기에 궁금해서 봤는데 역시나 내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아이들의 세계를 다룬 벨기에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달 예고편을 보며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아직 상영 중이었고, 유쾌함이나 편안함을 느낄 새가 한순간도 없어 피로감이 상당했지만 볼 만 했다. 범죄액션물은 전혀 취향이 아니지만 손석구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심야로 볼까도 생각했으나, 부산 오기 전 집 정리하느라 체력장 다음 날 컨디션이었고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며 더욱 지친 데다 마지막 영화의 무게에 심신이 압도되어 관뒀고 잘한 일 같다.

 

1년 넘게 정기적으로 가다 보니 cgv서면 art2관 리클라이너 좌석의 쾌적함에 길들여져서 다음 날의 [브로커]는 cgv삼정타워 리클라이너관으로 보러 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이 대개 좋은 느낌이었어서, 이번에도 기대했는데 화려한 출연진 덕에 초반에는 몰입이 어려웠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빠져서 봤고 역시 이름값이란 게 있구나 싶었다. 극중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교회가 전포동에 위치하고 도입부 선아의 동선이 그 일대와 서부산터미널이었는데 최근 1년 여 가장 자주 오간 공간들이어서 불쑥 반갑기도 했다. 시간이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이 의외로 재미있고 괜찮아서 욕심 부리지 않고 여느 때보다 적은 편수의 영화를 본 이번 달 여행의 마지막이 그런대로 흔쾌했고, 돌아오는 길 [브로커]와 겹쳐진 서부산터미널 내부가 약간 다시 보이는 기분이기도 했다.

 

나를 거쳐간 수많은 이야기들에 내가 모르는 무수한 이야기들까지 생각하면 소설이든 영화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까울 것 같은데, 한편 소설이든 영화든 작품을 구성하는 적잖은 요소들의 조합 역시 거의 무한대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때로 나름의 새로움을 만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긴 뽀로로 시기가 마무리되는 시점, 조금은 무리한 부산행의 영화들이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작품마다 들어갔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과 정성 같은 걸 생각하면 그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향후 몇 년은 통영에 살 테고 영화 보기를 위한 부산행은 이어질 텐데, 그래도 한 편 정도는 반짝 마음에 불을 켜주는 영화를 만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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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