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22. 7. 5. 19:19

 

 

통영행 버스 안이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아낄 이유는 없지만 버스에서 잠들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해 뒤척일 것 같아서 처음 시도해본다. 마지막 영화의 여운을 안고 전포역까지 걸으며 무료쿠폰으로 교환한 m사이즈 달콤팝콘을 저녁 삼아 열심히 먹었더니 과당 상태인지 약간 몽롱하다. 7월까지가 기한인 팝콘 무료쿠폰 두 장이 있어서, 버려도 그만이지만 흔쾌히 받아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싶었는데 운 좋게 오늘 [모어]를 보러 들어가기 전 키오스크 앞 한 젊은 커플이 받아주었다. 나한테 필요 없는 걸 나눴을 뿐이지만 조심스레 말을 걸고 의사를 묻고 주문서를 전하니 작은 행운이라도 만난 듯 놀라워하며 고마워하는 여성분 덕분에 기분이 환해졌는데, 괜히 민망해서 마음처럼 웃으며 화답하지 못한 게 아쉽다. 나머지 한 장도 그렇게 사용하고 싶었으나 평일이라선지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작은 사이즈니까 먹어버리자 했더니 입 안이 과하게 달다.

 

여섯 편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일별하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듯 아득한 느낌이다. 어제는 영화 세 편의 객석 컨디션이 매우 불량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다행히 오늘은 나쁘지 않았다. [헤어질 결심]을 볼 때는 같은 줄 옆 쪽의 관객이 시작부터 환한 휴대폰 불빛으로 방해를 해서 두어 번 참다가 기척을 냈다. 이후에도 시간을 확인하는지 몇 차례 휴대폰 불빛이 새나왔는데, 영화 보면서 화면 조도를 낮추지도 않고 몇 번씩이나 휴대폰을 확인하며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 없다. 영화가 30%쯤 진행됐을까 싶을 때부터 스크린에 파리 그림자 같은 게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도 시체에 달려드는 벌레들이 종종 나타나서 효과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영사기 빛을 향해 날아다니는 벌레였던 것 같다. 전체 상영 시간 중 절반쯤 띄엄띄엄 나타난 파리 그림자는 화면의 명암에 따라 정도를 달리하며 거슬림을 시전했는데, 어제 지난한 객석 컨디션의 서막이었던 것 같다. [컴온 컴온]을 볼 때는 앞의 앞 열에 앉은 사람이 시작부터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계속 반복됐고 바스락 한두 번 후에 계단에 대고 과자 부스러기를 터는 손짓이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개별 포장된 과자 상자를 사와서 다 처먹는 건지, 전반적으로 조용히 진행되는 영화 내내 그러고 있는 게 짜증을 넘어 놀라웠다. [호수의 이방인]을 볼 때는 내 옆으로 세 좌석 떨어져 끝 자리에 앉은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캔 따는 소리에 이어 마시는 소리, 캔 구기는 소리 그리고 일련의 소리들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속으로 영화관에서 뭘 그렇게들 처먹냐고 욕하며 참고 있었는데 조금 후부터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영화가 조용해질수록 코 고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제일 뒷줄이었는데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얼마 후 내 반대편으로 옆 쪽에 앉은 남성이 그에게 큰소리로 뭐라고 했다. 그는 잠시 깨어난 듯했지만 곧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뭐라고 했던 남성의 옆 쪽에 있던 여성이 내 앞을 지나 그에게 가서 정중하게 얘기를 했다. 코 고는 남성 바로 앞 자리의 관객은 신기하게 미동도 없이 영화에 집중하는 것 같았고, 이후에도 무척 조심하지만 참을 수 없다는 듯 코 고는 소리는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물론 무척 별로였고 그와 자리가 가까운 탓에 괜히 나까지 신경이 쓰였는데 직접 뭐라고 한 사람들 말대로 그가 나가주는 것도 괜찮았겠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나는 코 고는 소리가 (나름 조심은 했겠지만) 의식적으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보다는 참을 만했다. 영화 시작부터 (아마도) 맥주를 두 캔이나 마시고 처자며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는 건 짜증났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지오플레이스 정류장에 내려 cgv서면으로 갈 때만 해도 나를 기다리는 영화들 생각에 즐거웠는데, 무슨 날인가 싶게 세 편 연속으로 무례한 관객들과 함께하고 보니 문득 마음이 우울해졌다.

 

극장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몇 달 연속으로 갔었는데 갈수록 청결 상태가 떨어지고 찝찝함이 커지고 있어서 이번에는 다른 곳을 예약했다. 앱에서 예매할 때 3만 원 내외인 저렴한 숙소에 기대할 건 없지만, 역시나 거기서 거기였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조조로 [니 얼굴]을 봐야지 생각했는데, 2년만에 사흘 출근한 다음이어선지 역시 피곤했고 러닝타임이 짧더라도 하루 네 편은 무리다 싶어 관뒀다. 체크아웃 시간이 1시여서 오전 시간을 아주 여유롭게 쉬고 나와 영화를 보러 갔다.

 

[모어]는 부산행 날짜를 잡기 전에는 아예 몰랐던 영화였다. art2관에서 한 편은 봐야 안 섭섭할 것 같아 살펴보다 보니 시간이 딱 맞았는데, 강렬하고 화려한 드랙퀸 포스터에 살짝 갈등하다가 예매했다. 포스터 분위기로만 짐작하기에는 텐션이 너무 높을 것 같아 불감당일까봐 걱정도 됐지만, 다큐이고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한참 전이지만 [헤드윅] 좋아했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전혀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내내 푹 빠졌다가 나왔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번 부산행의 의미는 [모어]를 보는 것이었다고,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레드 로켓]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염두에 뒀던 작품이어서 반가웠는데, 잘 만들었지만 계속되는 실소에 피곤한 농담 같은 영화라고 느꼈다. 마지막 [김광석, 못다 한 이야기]는 김광석 아저씨의 공연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반색하며 타이밍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방울방울 추억과 함께 33분이 쏜살처럼 지나갔는데, 예상대로 음질과 화질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기회가 된다면 [모어]는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쉽지 않을 것 같고, 얼마 전 출간됐다는 모지민 님의 에세이를 조만간 사서 읽어보려 한다. 너무 월초에 영화여행을 다녀와서 남은 7월이 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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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