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대째 손인형극단을 운영하는 가족, 평생 헌신한 아버지가 늙고 힘에 부치기 시작하자 아들 루이가 인형극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피터르가 함께하기 시작한다. 화가를 꿈꾸지만 가난으로 인해 노숙인처럼 지하철에서 생활하기도 했던 피터르는 정말 돈이 없거나 궁하면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과 생활을 반긴다. 여러 사람이 장막 뒤에서 두 팔을 뻗어 올려 인형 동작을 표현하며 대사까지 맞추는, 체력과 호흡이 중요한 작업에서 피터르는 합격점을 받았고 모두의 바람대로 정식 구성원이 된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가족의 분위기는 다정하고 평화롭다. 젊은 날 공산주의자였던 할머니는 노령에도 멋지고 위트 있는 어른이고, 가업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일에 열정적이다. 어머니는 막내를 낳고 얼마 후 돌아가셨지만 이제 그 빈자리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손인형극을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은 남매들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자매들은 여성의 권리 찾기와 사회 참여에도 열심이고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대화는 자유롭다.
피터르의 합류로 안정감을 찾은 듯했던 손인형극단은 공연 중 쓰러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손인형극단에서 만난 로르와 사랑에 빠진 피터르는 임신 중인 동거인 엘렌과 점점 소원해지고, 에두아르가 태어난 후 헤어진다. 피터르를 찾아온 엘렌에게 호감을 느끼고 아기를 보러 찾아갔던 루이의 마음은 점점 엘렌을 향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위기를 맞은 극단의 돌파구로 남매들은 순회공연을 떠나지만 녹록지 않다. 피터르는 뒤늦게 손인형극에 대한 혼란과 회의에 휩싸이고, 아버지의 죽음 후 이상행동을 보이던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이어 경험한 남매들은 기로에 선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손인형극 작업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 루이는 연극배우로 전향하며 엘렌과 동거를 시작한다. 마르타와 레나는 새로운 시대의 서사를 입힌 인형극을 시도하며 분투하지만 극단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극단을 떠나 그림에 매진하는 피터르와 함께하는 로르는, 생계에 무심한 채 혼자만의 완벽한 예술을 추구하며 무너져가는 피터르를 힘겹게 견디고 있다.
연극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한 루이는 궁지에 몰린 피터르를 흔쾌히 돕고 동생들의 어려움도 헤아리지만, 이미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로르는 스스로 침몰하며 괴팍하게 변해가는 피터르를 마침내 떠나고, 현실을 깨닫고 그림들을 판매하려 지하철역으로 나선 피터르는 사람들의 무심함에 절망해 폭발하고 만다. 난동을 부리다 체포되어 병원에 입원한 피터르는 그제야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서 놓여난 듯 평온해보이고, 유리창 너머로 로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작품을 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 몇 편의 영화로 낯설지 않은 아들 루이 가렐이 절반은 이해할 수 없는 소개글의 난감함을 상쇄해준 덕에 선택. 볼 때는 몰랐는데 정리하며 캐스트를 살펴보니 자매를 연기한 마르타와 레나의 성도 가렐이었다. 이전의 필모들 중에 아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있어 신기했었는데, 자녀들과 함께한 감독의 영화 작업이 작품 속 손인형극단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이중의 가족 기록으로 보여지는 점이 흥미롭다.
감독의 이름값이 주는 선입견 때문인지 할머니부터 갓난아기까지 대략 4대가 등장하는 어떤 유장함 때문인지 흔들리는 인물들과 불안한 상황이 연속되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안정감 같은 것이 있었다. 무신론자였던 할머니의 장례에서 가족들만 남게 되자 관 뚜껑의 십자가를 제거하는 루이의 모습은 가족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처럼 인상적이었고, 피터르와 엘렌, 엘렌과 루이의 쿨한 관계가 살짝 놀라웠지만 가족의 소중함만큼이나 다양한 가족 구성도 인정하는 문화적 풍토를 반영하는 것일까 싶어 신선했다.
루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전개되는 영화는 다행히 난해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인형극과 집안에서 자주 투샷으로 잡히는 자매 마르타와 레나 그리고 피터르와 사랑에 빠진 로르를 두고 혼란에 휩싸였다. 초반 손인형극 연습에 이어 피터르와 키스하는 로르를 당연히 자매 중 한 명이라고 인식했고, 이야기가 전개되며 가족과 함께하는 두 자매의 얼굴에서 로르를 찾을 수 없어 촬영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걸까 싶었는데, 헷갈림이 시작된 순간부터 로르의 ‘정체’를 나름 의식하며 봤음에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났다. 잘 없는 경험이라 난감했고 뭔가 홀린 느낌에, 영화의 제목이 왜 북두칠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소회가 더해졌다. 속 시원히 알아낼 방법도 없으므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으로 나랑 합의.
10/12 CGV 센텀시티 스타리움관
[The Plough]
국가/지역France/Switzerland 제작연도2022 러닝타임97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Director: Philippe GARREL 필립 가렐
Cast: Louis GARREL, Léna GARREL, Esther GARREL
Program Note
전작 <눈물의 소금>(2020)에서 여자가 ‘북두칠성’에 대해 묻자 남자는 관심 없다는 투로 답한다. 신작은 어쩌면 그 대답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가렐 영화에서 가족이 새삼스러운 주제는 아니지만, 근래 개인의 섬세한 내면을 그려온 것과 달리 <북두칠성>은 집단으로서의 가족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상할 정도로 바깥 풍경에 인색한 건 그래서다. 3대가 유지해 온 손인형 극단이 두 번의 죽음을 거치는 동안, 가족의 가지는 몇 갈래로 나뉜다. 그 결과, 꿈꾸는 예술가와 다사다난한 가족의 초상이 고스란히 담긴다. 거기에서 단순하지 않은 가렐의 가족사와, 화려함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이력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가렐의 인물과 관계가 집결된, 아울러 거장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라 할 가렐의 숨결이 짙게 밴 작품이다.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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