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빈센트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출근한 어느 날 미팅을 위해 둘러앉은 자리에서 새로 온 인턴 위고에게 딴의 농담을 던진 후, 갑자기 흥분한 그가 휘두른 노트북에 상처를 입는다. 주변의 제지로 상황은 진정되지만, 얼마 후에는 일하던 빈센트와 눈이 마주친 다른 팀원 이브가 갑자기 달려들어 볼펜으로 찌르는 일이 발생한다. 연이은 사내 폭력에 회사는 면담을 진행하지만 마주한 당사자들은 혼란스럽다. 볼펜으로 공격한 이브는 이성을 잃은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고 빈센트의 당혹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
퇴근 후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누군가도, 귀갓길 계단에서 마주친 위층의 어린 남매도 순식간에 돌변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일을 겪으며 빈센트는 공포에 휩싸인다. 창문 너머 맞은 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에게 시험 삼아 인사를 건네고 눈을 맞추자 그 역시 갑자기 격분해 재떨이를 던진다. ‘눈이 마주치면 시작됨’, ‘눈을 피하면 끝’. 며칠 사이 자신에게 반복되는 악몽 같은 현상에 대해 나름 분석하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빈센트는 일단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야반도주하듯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버지의 집, 하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동거인이 있는 터라 환영받지 못한다. 할 수 없이 비어 있는 어린 날의 집으로 피신하던 빈센트는 휴게소에서 부랑아 같은 입성의 조아킴DB를 만난다. 대학교수였다는 그는 빈센트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다며 선배로서 조언을 건네고, 같은 처지인 ‘감시병들’의 존재와 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알려준다. 고향 마을에 도착한 빈센트는 빈집의 기척을 반기며 인사하러 온 옛 친구도 낯선 이웃도 피해가면서, 조아킴DB의 조언대로 입양한 개 ‘술탄’과 함께 은둔을 시작한다.
누군가와의 마주침을 최소화하기 위해 빈센트는 집의 잔고장을 직접 수리하고, 음식을 대량 주문한 식당 앞에 차를 대고 몸이 불편한 척도 하지만 완벽한 비대면의 생활은 불가능하다. 와중에 음식을 전달하는 틈에 담배 한 대로 숨을 돌리곤 하던 식당 웨이트리스 마고에게 끌림을 느낀 빈센트는, 우연히 위험에 처한 그를 돕게 된다. 정박된 요트를 집 삼아 살아가는 무일푼의 자유로운 영혼 마고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허우적대는 빈센트의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서로의 눈을 피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사랑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불안하고 애잔하다. 둘만의 분투가 이어지는 사이 세계는 폭력 바이러스에 잠식됐다. 이유 없는 무차별 공격이 난무하고 생존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로 도로는 아비규환이다. 차 밖으로 나온 이들은 좀비처럼 아무에게나 질주하고 나뒹굴며 지옥도를 재현한다. 빈센트와 마고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안간힘을 다해 도주에 성공하지만, 창궐하는 바이러스는 마고와 빈센트의 입장을 바꾸고 만다. 비로소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눈을 가리고 수갑을 채우고, 그렇게 함께다.
각자의 삶을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방향 없는 분노와 증오로 발현되고 모두가 무의미하고도 치명적인 표적이 되는 세계의 위기. 아직 전면화되지 않았지만 서서히 누적되며 잠복하고 있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위험을 물리적으로,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과감히 영상화한 느낌의 영화였다. 감독이 구현한 디스토피아는 영화가 끝나면 종말을 맞지만, 풍자한 현실은 부정적인 가속화 경향의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무섭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극한의 공포를 겪으며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궁지에서 인간은 움츠림과 경계를 넘어 적대로 나아간다. 인턴과 팀원의 일방적인 폭력에 나름의 관용을 보였던 빈센트가 도피 이후 계속되는 위협 속에서 이웃과 사투를 벌이고 쓰러진 그를 트렁크에 가두는 모습은 섬뜩하다. 자신의 병이 다 나았고 아내에게 돌아간다는 연락으로 빈센트에게 희망을 안겼던 조아킴DB가 얼마 후 아내의 외면에 절망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부분 역시 그랬다. 무수한 위험에 맞서며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되더라도 삶을 떠받치던 의미를 상실하면 생의 의지는 무화된다.
상처 입은 마고와 빈센트의 마지막 모습은 얼핏 [퐁테프의 연인들]의 결말부를 연상시켰지만, 해골프린트 셔츠에 개성 넘치는 외모를 한 감독이 소개 영상에서 이야기한 ‘그럼에도 사랑’인지는 갸우뚱해졌다. 현실을 풍자하며 한계 없는 몽상처럼 확장되던 이야기가 나이브하게 봉합되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메시지와 이미지가 주효한 영화였던 것 같지만 뭔가 헐렁한 내러티브의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를 보며 내심 왜 선글라스 에피소드가 없을까 생각했는데, 퇴장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소한 거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현실과 유리된 헛소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아내는 궁금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일은 사실 시간표 채우기에 갈등이 많았던 날이다. 보고 싶은 영화들은 다른 날에 시간대가 겹쳐 있었고, 크게 기대되지 않더라도 GV가 있다면 선택하려 했지만 폐막 전날이어서 찾기 힘들었다. 숙박비 들여가며 머무는 건데 영화를 안 보기는 아쉬워서 시간표를 몇 번이나 훑어보다가 어렵사리 결정한 영화였다. 홈페이지의 영화 제목 아래 무려 ‘범죄/폭력 심리/미스터리/서스펜스/스릴러 코미디/유머/블랙코미디/풍자 호러/고어’라는 태그가 달려 있었음에도 프로그래머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는데, 생각할 거리는 남겨줬지만 자주 등장하는 폭력 장면은 힘들었고 결과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10/12 CGV 센텀시티 5관
[Vincent Must Die]
국가/지역France/Belgium 제작연도2022 러닝타임108min 상영포맷 DCP 컬러Color
Director: Stéphan CASTANG 스테판 카스탕
Cast: Karim LEKLOU, Vimalas PONS, François CHATTOT, Michaël PEREZ, Emmanuel VÉRITÉ, Guillaume BURSZTYN, Benoit LAMBERT, Jean-Rémy CHAIZE, Maurin OLLES, Jean-Christophe FOLLY
Program Note
빈센트의 일상은 요즘 악몽 그 자체다. 직장, 길거리, 아파트 등 곳곳에서 사람과 눈만 마주치면 이유도 없이 얻어맞는다. 이제 직장에 다닐 수도, 아무도 만날 수 없는 빈센트는 유년기를 보낸 시골 마을로 피신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의 물결이 프랑스 전역을 뒤덮는다. <빈센트 머스트 다이>는 긴장감 넘치는 공포물이자, 팬데믹과 경제적 위기로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풍자다. 음모론, 인종차별적 담론, 배타성 등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발현되는 세상의 잠재된 폭력이 빈센트의 삶을 잠식한다. 스테판 카스탕 감독은 유려한 미장센으로 무거운 주제를 장르로 풀어내고, 역동적이고 코믹한 카림 레클루의 연기는 작품에 핍진성을 더한다. 공포에 휩싸인 한 국가를 횡단하는 서스펜스 로드무비 <빈센트 머스트 다이>는 존 카펜터나 조지 로메로의 작품에 비견할 만하다. (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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