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지닌 대중문화 컨텐츠와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전망과 윤리라는 매우 확고한 믿음에 기인하는 것 같다. 과거 트위터의 리트윗을 통해 가끔 그의 의견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속한 장에서는 꽤 '소수의견'에 속할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수긍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기억으로 신간 소식을 듣고 선택했는데, 레퍼런스로 삼은 대상 중 팔할 이상이 몰랐거나 낯선 것이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발표했던 글에 대해 책 출간을 준비하며 새로운 코멘트를 덧붙인 점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느껴졌다.
글이 재미 없지는 않았지만 꽤 계몽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내가 경험하는 것보다 세계는 훨씬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의 글이 상대하는 세계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평론가, 한 편의 글이 세상의 변화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크지 않겠고, 그도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의외로 그랬으면 하는 큰 열망이 잠재되어 있을 것 같다고도 느꼈다. 웹툰을 본 적이 없고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역시 본 적이 없다 보니 사례로 언급되는 대다수 작품이 초면이거나 제목만 얼핏 들어본 수준이었는데, 그의 비판과 지적을 수용한다면 놀랍도록 저열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학벌없는세상에서 활동하던 하재근이 대중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로 연예 프로그램에 등장한 걸 목격했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중문화가 곧 연예계 일련의 일들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비판적 논점 없는 그의 코멘트를 접하며 알지도 못하면서 생계의 무게를 떠올렸었다. 인기와 화제성이 모든 걸 잠식해버리는 연예산업 내에서 주류의 목소리에 편승하지 않고 '외로운'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듯한 저자의 태도가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성의 없고 뭉툭한 독후감이 미안할 지경이지만, 그의 분투가 환기하는 변화가 가끔은 발견되기를 바란다.
위근우
2022.8.26초판1쇄,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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