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은 우리에게 먼 이름이다. 윗세대의 영화 이야기를 읽다보면 흔히 접하게 되는 외국 문화원에서의 영화 감상과 토론, 그리고 형성되는 가난하지만 진지한 일종의 살롱(?) 문화. 인구에 회자되며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했던 몇 십년 전의 문화원은 경험한 자에겐 향수를, 아닌 사람에게는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추억 속의 이름일 뿐 실제 생활 속에서는 쉽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접하게 된 이 책은 문화원이 낭만과 추억 속의 이름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어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블랙홀임을 알려준다. 마음을 먹고 발걸음을 옮긴다면 말이다.
외국어와 문화, 각종 행사와 정보라는 네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각국의 문화원을 분류한 이 책은, 각 문화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진과 친절한 설명이 있어 저자를 따라 직접 문화원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익숙한 선진국 뿐 아니라 아직은 낯선 중남미와 아랍, 터키 등의 문화원까지 정보의 편재 없이 각국의 특징을 잘 살려 고루 다루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전문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려는 흔적과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외국 공관의 하나일 뿐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문화원이 실은 아주 가까이 있고, 각국 문화원의 자국을 알리기 위한 노력과 관심있는 한국민에게 언제든지 손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쯤 방문해보고픈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대다수 문화원이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서울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언제든 시간을 낸다면 어렵지않게 방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용서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을 줄일 수 있는 탄탄하고 내실있는 책이다. 문화원에 직접 찾아갈 때 가볍게 소지할 수 있는 핸드북 크기였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전문 여행 정보 책자처럼 바뀐 사항을 체크하고 개정판을 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2003-02-15 16:06,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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