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여기저기서 마주쳐 궁금했던 [스토너]를 올해의 첫 책으로 읽었다. 제목이자 이름의 주인공인 인물의 부고와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는, 격동하는 시대를 고요하고 담담하게 살다간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간다. 스토너는 삶의 방향을 극적으로 바꾸는 현란한 빛과 같은 계기도 희열보다는 혼란으로 느끼며, 자신에게 주어지고 선택한 길을 답답하리만큼 우직하게 감내하며 걸어간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영문과 교수로 삶을 마친 그의 일생은 외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상승곡선을 그리지만, 그 과정의 일상은 지극히 소시민적으로 그려진다. 영웅도 반영웅도 아닌 ‘보통의 삶’에 연루되는 무수한 관계와 그만큼의 의미,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의 삶에나 깃든 기쁨과 슬픔과 장엄함을 생생히 그려낸 소설이었다.
당대의 기대수명만큼은 살다간 스토너의 일생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많지 않다. 어려서는 부모, 대학 시절에는 한 사람의 은사와 두 친구, 결혼하며 생긴 아내와 장인장모 그리고 딸 그레이스, 대학에 자리잡은 후 만난 몇몇 동료들과 학생들, 그중 인상적인 관계로 등장하는 로맥스 교수와 찰스 워커과 캐서린 드리스콜. 전 생애를 통틀어 열 명쯤의 인물들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에 무엇보다 그에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학문과 가르침의 세계다. 물론 소설의 전개상 집중할 수밖에 없는 주요 인물들이 설정된 것이겠지만, 일생을 살아가는 데에 그렇게 많은 관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도 읽혀졌다.
스토너를 곤경과 사랑에 빠뜨리는 계기를 제공한 세미나의 주제였던 ‘르네상스 시대까지 살아남은 중세 전통’은,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요소들에 대한 천착이라는 점에서 그의 삶과도 이 소설과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대는 언제나 가장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일 것이다. 의식하든 못하든 사람은 살아가는 한 동시대 역사의 모든 국면을 통과하며 변화를 흡수하지만, 와중에도 부지불식간 자신이 선택하는 가치와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스토너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공부와 사랑은 쓸쓸하기도 했지만, 결국 혼자이고 끝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어느 순간을 반짝이게 만든 선물이었던 것 같다.
작가가 내향적이고 보수적이고 진중한 스토너에게 첫 번째 용기를 부여한 시점은 이디스에게 첫눈에 반해 다가갈 때였다. 그때의 이디스는 여느 문학 작품의 여주인공과 다름없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다. 대략의 분위기만으로 짐작 가능한 외로움 속에 성장한 이디스는 결혼 이후 돌변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과 잠으로 침잠하지만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는 극단적인 변신을 거듭하고, 작가는 그런 이디스의 행태를 공격과 선전포고라고 서술한다. 차분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여서 차분히 따라 읽으면서도 작가의 관점은 이디스에게 부당한 ‘중립적’ 관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디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면 스토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상황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그려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레이스는 캐서린을 만나기 전 스토너가 가장 사랑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손길로 키우고 서재에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스토너는 난생처음 사람으로 인한 행복감을 느꼈을 것 같다. 이디스의 개입으로 멀어지고 사춘기를 겪으며 급변하고 혼전 임신과 출산에 알콜 중독의 싱글맘으로 나이 들어가는 사랑하는 딸에게, 스토너는 다시 다가가지 못한다. 내가 경험한 부모 자식 관계를 대입하기에는 시공의 조건이 완전히 다르지만, 스토너와 그레이스의 관계와 변화를 따라가는 흐름이 인생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사랑해도 어떤 관계라도 상대의 불행과 전락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가족을 비롯한 타인의 영향 속에 살아가지만 지금의 삶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
스토너와 캐서린의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기뻤다. 마침내 온전한 짝을 만난 듯 심신의 충만감을 만끽하는 두 사람의 방이 그려지는 것 같았고, 결혼반지를 간직하는 대신 오두막에 남겨 놓는 캐서린의 결정에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흔한 불륜일 뿐인 사랑이지만, 현존을 내버리고 사랑만을 위해 도피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두 사람의 합의는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라고 느꼈다. 로맥스의 보복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거기까지였을까. 캐서린이 떠날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고, 마지막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에 스토너가 감사했다는 부분은 솔직하지만 너무 냉정한 진실을 담은 문장이어서 놀라웠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너 캐릭터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와 가장 극적인 대립 지점에 선 로맥스 그리고 찰스를 장애인으로 그린 작가의 의도도 궁금했다. 로맥스 캐릭터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그가 스토너를 제소하겠다며 학칙을 거론하는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고 적잖은 양가감정을 느꼈다. 소설이 발표된 1965년 즈음 장애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게 되는 두 인물의 공감대를 장애라는 신체적 특징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소수자에 대한 연대와 연민이라는 당위적 사고가 당시에 얼마나 인정되는 것이었는지, 단지 복잡한 조건을 통해 대체로 잔잔한 소설에 극적인 장치를 추가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혹은 스토너의 신념과 로맥스의 복수가 빚어내는 현실에서의 충돌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지. 로맥스 부분을 읽을 때마다 여러 생각들이 뇌리에 맴돌았는데, 오히려 그렇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독자가 성찰해야 할 부분인가 싶어지기도 했다.
책의 띠지와 말미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글에는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읽고 나니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되었다. 책날개와 옮긴 이의 말에 실린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에는, 그 영웅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의미의 단어라면 동의가 되지 않는다. 스토너의 삶의 외형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었지만 그 내면은 언제나 외롭고 공허하고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한 인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을 때,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느끼는 평균적인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좋은 책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디스에 대한 묘사와 서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서 나는 이 책을 감히, 대단히 사려 깊은 남성 서사라고 말하고 싶다.
존 윌리엄스•김승욱 옮김
2020.6.24.1판1쇄 2022.9.15.1판10쇄 발행, (주)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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