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0:41


'시설'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사실 이 책의 발간이 내심 반갑지만은 않았다. 사진과 함께 새로 단장한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으로 약간은 실망을 한 이후, 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기다렸던 터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혹여 신혼의 단꿈에 젖은 그가 이제는 고독한 글쓰기와 멀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주제넘는 우려와 함께.. 하지만 책 말미에 붙인 '그의 실존을 문학의 유령이나 아닌가 생각한다'는 심상대의 말처럼, 어쩌면 글 쓰는 천형을 누리는(?) 그에게 너무나 가혹한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윤대녕의 글에 빠져 허우적대던 날들이 벌써 몇 년 전으로 까마득하기도 하다. 97년 IMF 덕에 대졸실업자의 정체성이 대외적으로도 별 부끄러움 없었던 그 때, 뒤늦게 탐독하며 읽어댄 그에게 나는 너무나 깊이 매료되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그의 세계에 나는 마치 세상 처음 만난 공감인 양 빠져들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혼란하고 우울한 자아와 마주칠 때마다 동지애를 확인하듯 위로받았던 그의 글들에 나는 거의 무방비상태였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내 삶의 진상을 확인하는 카타르시스. 윤대녕은 그렇게 이율배반의 환희를 선사해준 유일한 작가다.

조금은 탐탁찮은 마음이었지만, <에스키모 왕자>를 다시 만난 새벽은 예전의 그 예민한 마음들이 아직 내 속에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접어두고 포기하는 많은 것들, 단지 현실이라는 이름 때문만은 아닌 많은 것들을 나는 얼마나 쉽게 단정 짓고 떠나왔었나. 접어두고 넣어둬도 언젠가는 허를 찌르며 나를 찾아올 자문에 대해, 산고와도 같은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마주하고 대면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의 이야기 속 인물과 사건은 현실에서 만나기도 일어나기도 참으로 힘든 몽상과도 같아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우연한 만남과 관계 그리고 불가해한 행동이 실은 누구나 가끔은 꿈꾸는 부러운 일탈이 아닐까. 그 누구도 스무 살 이후의 내가 어릴 적에 봤던 똑같은 어른의 모습으로, 감성과 감정이 거세된 메마른 생활인의 모습으로 살아지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는 않았을텐데.. 살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스스로에게 던지는 방향없는 질문들은 오히려 한 곳을 보고 돌진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일반의 삶을 방해하는 건강하지 못한 고민으로 치부되어버리는 현실. 에스키모 왕자건 성성이건, 혹은 다른 이름이건 내 속에 함께 있었던 그 무엇이 새삼 그립다.


2003-04-26 06:31, 알라딘



에스키모왕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어른을위한동화/우화
지은이 윤대녕 (열림원,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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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