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님의 책 두 권을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며 다 읽었다. 참수필집이라는 꼬리말이 달린 두 권의 책 속에는 사방천지에 널린 '참'것들에 대한 저자의 눈짓과 몸짓이 가득하다. '참'이라는 짧은 한마디가 참으로 적절하게 딱맞는 글이며 책이며 삶이다. 첫 권을 읽고 나니 1년 반쯤 후에 묶여나온 다음 책 속의 이야기들이 궁금해 내친 김에 오랜만에 책 읽기로 맞은 아침이었다.
'참꽃 피는 마을'에서 소개 받았던 최집사님과 신애, 대봉이 형님, 윤성씨 등 이름마저 낯익어버린 남녘마을 이웃들의 이야기가 마치 '전원일기' 보듯 머리 속에 드라마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니 이제는 짧은 소설처럼 펼쳐지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더 생명력있게 느껴지고 전작보다 더 발랄하게 눙치는 임의진 님의 문장이 더 생생히 살아나서 책장을 넘기며 혼자서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
다소 거칠게 묶여나왔다는 느낌의 첫 책에 비해 <종소리>는 은은하고 소박한 이동진님의 그림이 행간 곳곳에 깔려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임의진 님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웃과 함께하는 소소한 삶의 향기를 전해주지만, 조금 더 자기를 내비치며 '나는 이런 사람이오'하고 손을 내미는 느낌이다. 칠팔십 노인네들이 죽어나가는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서른 중반을 넘긴 젊은 목사의 일상은, 성직자(?, 그를 이렇게 함부로 분류해도 될까 싶지만)의 삶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는 일종의 충격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책날개의 농사를 조금 짓는다는 소개는 이웃 주민들이 들으면 박장대소를 할 일이고, 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와 그 준비 외에는 반백수나 마찬가지로 심심하기 짝이 없어 앞으로 30분 뒤로 30분 눕기를 반복한다는 그의 어떤 날, 이렇게나 나와 같다니! 애초에 사회적 지위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나 이목에는 아랑곳 없이, 한없는 외유와 가끔 비치는 내강으로 남녘땅의 작은 교회를 지키고 있는 그의 일상은 어찌보면 초라하리만큼 별다를 것이 없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퉁박을 먹이는 어머니와 그의 다툼에는 웃음이 절로 나고, 철없는 목사를 향하는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정다운 인심에는 울컥 목울음이 올라온다.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뉴스 속의 농촌과 그가 자리잡은 그곳이 다른 곳이 아닐진대 어떻게 그리 아름답고 행복할 수만 있으랴마는, 그가 쓰고 나누고 읽혀준 것은 그렇게 모두 아름답기만 하다. 물론 아릿한 슬픔의 여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가감없이 드러나는 목사가 아닌 한 인간, 세상 소풍하는 한 고독한 나그네의 모습이 참 좋다. 걸진 입에 두툼한 손을 가진 이웃들과의 어울림이 자연스러운 시골 목사의 정체성 이외에 그는 참으로 풍부하고 예민한 예술적 감성을 지닌 보헤미안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일기처럼 쓰여진 글 속에 언급되는 갖은 노래들과 영화, 그림, 책.. 그가 종교의 상아탑에 갇힌 목사가 아님은 책장 몇 장 넘기지 않고도 대번에 알 수 있었지만, 얼마나 세상 많은 것들을 가슴으로 보고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심상찮은 예술혼을 마음 밑바닥에 잠재하고 있는 사람인가는 책장을 넘길수록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세상 속을 부유하는 자유롭고 외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는 더 많은 사람과의 나눔으로 한없이 낮아지고 한 편 한없이 높아지는 지혜를 참으로 허허롭고 순수하게 체현해 보인다. 이 책을 묶어 낼 때의 그는 아직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남녘땅 시골 작은 교회 지킴이의 모습이다. 참 오랜만에 누군가의 삶의 모습을 보고 흐믓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래도록 변함없으리라는 믿음으로 앞으로 펼쳐질 임의진 님의 고무신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2003-04-14 22:08,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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