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활동도 많이 하는 곽재식 작가를 몇 년 전 트위터에서 처음 알았고 지금도 가끔 그의 트윗을 접한다.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은데 웃기고 요리도 잘하는 듯한 그가 낸 수많은 책 중 읽은 건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한 권뿐이지만, 가끔 일찍 일어난 날 김창완 아저씨 라디오를 기다리며 틀어놓는 <김영철의 파워FM>에서 "궁금할 수 있잖아요?!" 외치며 생활 속 과학 원리와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뜬금없이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반갑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유쾌함 덕분에 내 주제에 이 책을 샀고 전문성과 다방면의 해박함으로 꽉 채워진 이야기들을 쉬엄쉬엄, 대체로 재미있게 읽었다.
주기율표의 1번부터 20번에 해당하는 각각의 원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소와 매실주", "헬륨과 놀이공원", "리튬과 옛날 노래" 같은 제목 아래 펼쳐지는데, 관련 지식이 백지인 자로서 과학에 연루된 내용은 모두 새로웠고 아이스브레이킹처럼 연관되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웃기거나 흥미롭거나 놀랍거나 그랬다. 우주가 생성된 시기라든가 지구의 나이라든가 하는 건 상식처럼 알고 있고 싶다는 이상한 허영심이 있는데, 첫 번째 장에서부터 "세상이 생겨난 것은 대략 130억 년에서 140억 년 전"이라는 문장이 나오고 지구가 대략 45억 년 전에 생겨났다고도 나와서 이번에 외워보기로 하며 책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조차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느낄 수준의 독자이기 때문에, 전자니 중성자니 하는 작은 것들의 성격과 운동 원리와 성향 같은 것들이 이해의 기본으로 등장할 때는 좀 난감했지만 저자가 기초적인 내용부터 쉽게 설명한 덕에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지는 않았다. 열흘이 넘는 침대맡 독서로 읽느라 진도가 나갈수록 앞부분의 내용은 망각되고 뒷부분에서는 어디서 읽은 듯한 기시감에 사로잡히는 일이 잦았지만, 문장과 분량의 경제성이 떨어짐에도 앞서 언급했던 원자나 현상이 재등장할 때면 설명했던 내용의 핵심을 반복하는 수식어를 통해 독자의 기억을 환기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졌고 그 덕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침 그리스 로마 신화도 쉬엄쉬엄 읽고 있던 터여서 원자 이름의 기원이라든가 어느 정도 겹치는 단어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만 미처 몰랐던 세계의 비의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서는 어린이용 화학 입문서나 작가의 책 중 쉽게 쓰여진 과학 관련 책을 더 찾아서 볼까 싶은 마음도 들었으니, 꽤 괜찮은 독서였다. 하여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이름을 쳐보니 검색 결과에 무려 73권의 책이 나왔는데, 공저도 있고 혹시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에너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는 많겠지만 과학에 무지한 독자들을 위해 이런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다 싶어 고맙기도 했다.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몇 부분만 옮겨둔다. 작가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따뜻하게 열린 마음 덕분에 재미난 책을 읽었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를 이루는 여러 가지 원자들도 아주 먼 옛날 어느 별에서 가벼운 원자들이 빛을 내뿜으며 합쳐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 원자들이 긴 시간 우주를 떠돌다가, 우연히 한자리에 모여서 지구라는 행성이 되었고, 지구에 모인 다양한 원자 가운데 재주 많은 탄소를 중심으로 다른 여러 원자가 연결된 것이 바로 독자 여러분과 나, 우리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준다는 말이 있는데, 별 중에서도 탄소 원자가 좀 많은 부분을 따 온 것이 바로 우리다. 그러니 이 행성에서 생물이 살아가는 동안 힘이 들어 한숨을 쉴 때가 있다면, 그 숨결 속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도 결국은 별의 지친 잔해라고 말해 볼 수 있다.
- 111~112쪽, 6. 탄소와 스포츠
지구가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행성이 된 원인을 따져 보면 온갖 복잡하고 다채로운 화학반응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그 화학반응을 가능케 한 것은 지구에 산소 원자가 풍부한 데다 특히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는 산소 기체 형태로 대기 중에 가득 차서 곳곳에 스며 있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구의 지배자인 남세균이 오랫동안 활동한 덕택에 이루어진 일이기도 하다.
- 138쪽, 8. 산소와 일광욕
이야기를 다른 원자들로 확장하면, 태양 속에서는 수소 원자가 서로 합쳐져 헬륨 원자로 변하는 핵융합 현상 때문에 빛이 생기고, 그 빛이 지구까지 날아와서는 엽록소 속의 마그네슘, 탄소 등의 원자에 힘을 전해준다. 그 결과 물에 들어 있는 산소 원자, 수소 원자가 반응을 일으키고, 그것이 다시 생물의 몸속에 자주 등장하기 마련인 질소 원자, 인 원자가 붙어 있는 물질과도 여러 차례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 많은 화학반응의 마지막 단계에서 탄소, 산소, 수소 원자들이 먹음직스럽게 조립된 당분이나 몸을 이루는 다른 성분들이 만들어진다.
- 200쪽, 12. 마그네슘과 숲
알루미늄에 대해서 내가 품고 있는 한 가지 의문은 알루미늄이 생명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것이다. 알루미늄은 돌과 흙 속에 그토록 많이 들어 있는데도 알루미늄을 몸속의 성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생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마그네슘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 요긴하고, 철은 사람의 핏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징어, 문어, 투구게 등의 핏속에서는 구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런 동물들의 피는 사람과 달리 푸른색을 띤다. 옛날 SF에는 문어를 닮은 외계인이 사람으로 변장한 채 돌아다니다가 초록색 피를 흘리는 바람에 정체가 탄로 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 233쪽, 13. 알루미늄과 콜라
그런데 어찌 보면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모든 희로애락과 갑작스레 경험하는 격렬한 감정과 깊은 상념과 끝없는 꿈까지도, 결국은 전부 신경 속에서 전기를 띤 포타슘이 여기로 흘러갔다가 또 저기로 옮겨 갔다가 하는 과정일 뿐이다.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따져 보면 볼수록 크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 352쪽, 19. 포타슘과 바나나
곽재식
2021.12.6.1판1쇄펴냄, 초사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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