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비전향 장기수 분들께 이런 단어를 붙이는 게 옳은 지 모르겠다. 그런데 때로는 눈물을 훔치면서 때로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오르는 말이 바로 이 '순정'이었다. 純情... '비전향 장기수'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드러났을 때, 그분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오로지 신념으로만 무장된 강철같은 이념형 인간 혹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고루하고 꽉 막힌 사람 정도로 인식되기도 했을 것이다. 또 실제로 그런 분이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자신의 살아온 세월을 풀어놓은 일곱 분의 할아버지들은 정말 하나같이 외유내강의 순정파 어르신들이었다.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사이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태어나, 2000년 9월 2일에 북으로 송환된 일곱 분 할아버지들의 회고가 '비전향 장기수 7인의 유예된 삶'이라는 부제로 묶였다. 그분들이 오랜 동안 감옥에서 겪은 인간 이하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감히 말을 덧붙일 수가 없다. 누군가 결국 이겨낸 고통이 타인의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할 때, 가벼워지고 익숙해지고 심지어 무덤덤해지는 것은 슬프지만 진실이다. 온몸으로 시련의 현대사를 살아낸 할아버지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분단의 극복, 조국의 통일이라는 우리에게는 선언적인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대신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 형제 처자식이 있는 보통의 청년이었던 그분들이, 전향서 한 장과 맞바꾸면 그만일 수십 년의 감옥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었음을 확인한다.
우리들은 이미 현실감을 잃어버린 분단의 극복과 통일 조국에의 열망을 그분들이 그토록 끌어안았던 이유는, 조국을 잃으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일제시대의 뼈저린 교훈 그리고 주체적으로 우리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해방 공간에서의 생동하는 경험에 근거한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을 우리 손으로 되찾는 길이 곧 가족과의 행복을 가능케 하는 전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한 몸 돌보는 것은 아무런 고려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이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이건 정말 당연한 선택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다. 상식선의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생명을 걸어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동시대 각자의 삶을 회고하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는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공간,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의 고착화에 이르는 커다란 역사적 줄기를 따라,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일곱 분의 몸으로 겪은 역사 이야기는, 큰 흐름으로 볼 때 같은 방향이었던 탓에 공통적인 부분들이 많고 그래서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반공교육으로 내면화된 무의식이 아무리 남로당이니 빨치산이니 하는 말들을 사고 이전에 금단의 영역으로 밀어내려한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했던 그분들의 열정 어린 숨결과 명징한 기억마저 묶어둘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생동하는 민중의 자율 공동체를 경험한 분들에게, 문제는 '공화국'이냐 '남조선'이냐 하는 이분법의 선택이 결코 아니었다. 가족과 조국, 목숨과 신념은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택하는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 그런 그분들이 독립운동 하다가 잡힌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을, 수십 년 후 반공법으로 잡혀들어가 다시 만나는 부정의와 아이러니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늘 날에도 심심치않게 거론되며 우리를 어이없게 만드는 소위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대체로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을 진공의 세월 속에 갇혀 지내며 젊은 시절 순정을 바쳐 건설한 '공화국'의 활기찬 기억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세월이 흐를수록 그분들의 심장에서 더욱 돋을새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친일파가 친미파로 결국엔 국가 수립의 지도층으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감옥 안에서 그분들은 스스로 더욱 단련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색깔로 덧칠된 주장 없이, 그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담담히 회고하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예전 서승님의 "옥중19년"을 읽을 때 느꼈던, 처절한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실존 공간으로서의 감옥을 마주하고 어찌할 줄 몰랐었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또 그냥 그렇게 잊고 지냈던 암담함 같은 것 그리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불가해한 신념에 대한 경이로움 같은 것. 그러나 수십 년 지옥의 세월을 견뎌낸 분들 중 누구도 자신을 대단하거나 특별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제는 지나온 야만의 역사 속 불운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아놓으면 뭉치고 흩어놓으면 번진다'는 어느 할아버지의 시구가 가슴에 와서 박힌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그 말은 그분들이 스스로를 이야기할 때에만 유효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감옥과 관련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분들이 주인공이었던 '송환'이나 '선택'에서부터 '쇼생크 탈출', '데드맨 워킹' 같은 감옥 영화들까지. 영화에서 보았던 대로 오랜 동안 감옥 생활을 하신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출소를 앞두고 느꼈던 엄청난 공포를 토로하신다. 모진 고문과 살인적인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강고한 신념의 소유자가, 바깥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암담함을 말하는 것은 결국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소 직후 또다시 요양소와 갱생원을 전전하는 안타까운 분들도 계셨지만, 가족과의 이산 혹은 절연으로 오갈 데 없는 그분들 모두가 다행히 따스하게 남한에서의 여생을 보내다 북으로 송환되셨다. 그저 미처 몰랐다고만 하기에 너무나 무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쉽게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너무나 평범하고 개인적인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그저 잊지 않기 위해 이런 책들을 읽고 가슴 아파 하는 일이 그분들의 고통을 내 삶의 양념으로나 삼는 것이 아닐까 송구함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함께 투쟁하고 연대한다해도 궁극적으로는 오롯이 자기의 몫일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삶이란 것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생에는 결국 한 인간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에, 사람들은 더욱 손 잡으려 애쓰는지도 모르겠다. 흑백 사진 속, 맑은 기운이 서려 있는 할아버지들의 정갈한 얼굴이 못내 아프다. 그분들이 지켜온 의지의 내용에 동의하건 말건, 그분들의 묶인 세월에 우리 세대가 지고 있는 빚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2006-07-19 01:05,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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